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농단’ 수사 이후 첫번째로 구속됐다. 검찰이 지난 6월 사법부 수사에 착수한 지 약 4개월만이다.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수사를 허용함에 따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임 전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심리한 뒤 27일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소명이 됐다”며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 0순위 후보’로도 거론되던 임 전 차장은 법복을 벗은 지 약 1년 만에 감옥 신세를 지게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12~2017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차장을 역임한 임 전 차장이 청와대·국회의원과의 ‘재판거래’, 법관사찰, 공보관실 운영비 유용 등 대부분의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연루됐다고 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소송 등에 개입한 정황 등은 그의 핵심 혐의다. 영장에 적힌 죄명은 직권남용을 비롯해 직무유기, 공무상비밀누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다. 개별 범죄사실은 30개 항목에 달한다.
임 전 차장은 전날 6시간에 걸친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은 징계나 탄핵 대상이 되는 사법행정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할지 몰라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형사 처벌할 대상은 아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성립에 다툼이 있으므로 구속영장을 발부해선 안 된다는 그의 논리보다는 혐의가 중대하고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영장을 발부한 임 부장판사는 지난 4일 영장전담 판사로 보임됐다. 그는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다.
그동안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거듭 기각하며 ‘방탄판사단’이라는 지적을 듣기도 했던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수사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임 전 차장의 주요 혐의에 대해 공범으로 적시된 만큼 이들에 대한 본격 수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임 전 차장이 각각 행정처 기조실장·차장일 때 행정처장을 맡은 박·고 전 대법관은 양 전 원장의 의중에 따라 임 전 차장에게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를 지시한 의혹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