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시장 참여제한이 5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계와의 역차별 발생, 토종기업의 해외진출 경쟁력 약화, 중소기업의 하도급 조건 악화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입법 전망은 불투명하다.
해당 규제를 담은 개정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2013년부터 적용된 후 대기업의 공공SW사업 수주는 거의 0%에 수렴해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총 3,456건의 공공SW구축사업이 발주됐는데 이중 대기업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0.4%인 14건에 그쳤다. 규제 이전 대기업 참여율이 약 50%에 달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변화다.
반면 해외 대기업들은 이 규제를 피해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공공SW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데 외국계 기업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출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법으로도 국내 대기업이 일부 예외적인 조건에 한해 공공SW사업에 응찰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심의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통과율이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결국 국내 공공SW시장은 대체로 외국계 대기업과 토종 중견기업의 경쟁구도로 재편됐는데 토종중견기업으로선 외국계 대기업에 대해 가격이나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대기업보다 더 원가 관리를 박하게 할 수밖에 없어 이 과정에서 하청 중소기업은 더욱 마진의 압박을 받는 형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경영정보학회가 지난 2015년 발표한 ‘SW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2013년 대기업 진출이 막힌 이후 시스템통합(SI)서비스업계 중견기업들의 공공 매출은 1년 만에 64%(293억→481억원) 급증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영업이익은 오히려 14억원에서 1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중견기업들마저 마진을 확보하기 어려운 저가의 공공발주사업은 꺼리면서 사업유찰 대란마저 일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3개월간 나라장터의 40억원 이상 공공SW사업을 집계한 결과, 약 절반이 무응찰 등의 이유로 유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은 대기업보다 하청 중소기업에 대해 교육기회 제공, 거래안정성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 강소기업을 키우겠다는 규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힘들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국계 대기업만 배불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내 규제의 여파는 토종SW 대기업의 해외진출길에도 악재가 되고 있다. 공공SW수주량이 급감하다 보니 해외SW사업 발주처에 내세울 만한 실적데이터가 미진해진 것이다. 그 결과 해외 사업 입찰시 기존 수주실적 등을 평가하는 적격심사 과정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불리한 위치에 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이나 중국의 SW업체들 모두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내수시장에서 사업실적을 쌓고 이를 통해 대외신인도를 쌓아 해외수출경쟁력을 얻는데 우리는 국내에서도 역차별을 당하는 상황이니 해외에선 더 경쟁하기 힘들어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개선책을 찾고 있다. 우선 공공SW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는 제한하되 민간투자형 공공SW사업은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도록 열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SW산업진흥법 전면개정안(SW진흥법)은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한 공공SW사업이 민간투자소프트웨어사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안이 추진된 지 1년이 되도록 국회에 발의조차 되지 않아 실제 통과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특히 민간투자형 공공SW사업도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대기업들이 R&D 투자에 나서기엔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심의 통과율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민간투자형 사업도 기술 투자, 사업계획까지 다 세운 뒤 심의에서 떨어지면 그 비용이 모두 손실로 잡히게 된다”라며 “사업 금액이나 중소기업과의 컨소시엄 비중 등 특정 기준을 정한 뒤 이를 충족한 기업들의 진출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