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사회자유당(PSL) 후보가 결선 투표 끝에 브라질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군사독재 옹호는 물론 여성비하 등 잇단 과격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임에도 날개 잃은 듯 추락하는 브라질 경제와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결국 극우 보수의 손을 들어줬다. 아르헨티나·칠레·페루·파라과이·콜롬비아에 이어 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까지 또 한 명의 우파 지도자가 탄생함에 따라 중남미 지역 정치 지형에 적잖은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28일(현지시간) 브라질 최고선거위원회는 이날 보우소나루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 결과 55.1%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내년 1월부터 제38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4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남미 좌파의 ‘얼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인 페르난두 아다드 노동자당 후보는 10%포인트 이상 뒤진 44.9%를 얻는 데 그쳤다. 브라질이 민주주의를 회복한 뒤 30년 만에 극우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됨에 따라 브라질은 전례 없이 급진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스콧 메인워링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브라질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우소나루의 당선은 래디컬시프트(radical shift)”라고 진단했다.
보우소나루는 이날 당선 후 글로부TV에 출연해 “우리는 함께 브라질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포퓰리즘, 좌파 극단주의를 계속 기웃거릴(flirt)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연방 하원의원 7선 등의 정치적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남미 좌파블록(핑크타이드)의 중심에 있던 브라질에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극우 정치인이 단숨에 1인자로 올라선 데는 지난 수년 동안 급격하게 악화한 브라질 경제상황이 일등공신이 됐다. 브라질 경제는 룰라 시절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추락을 거듭해 현재 실업률이 12~13%까지 치솟았으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치인 2.4%에서 1.2%로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된다. 공무원에 대한 복지 남발 등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7%를 넘어섰으며 5년 후에는 전체 인구 중 약 28%가 연금을 받게 돼 연금지급액과 의료보험, 공공 부문 급여 등 전방위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브라질 유권자들은 지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장기 집권한 좌파 노동자당에 경기침체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차악’에 표를 던졌다. 극우·친독재 등의 비판에도 ‘변화’를 예고한 보우소나루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본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최우선으로 하고 최대 현안인 연금개혁을 내년 중 완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공기업 민영화와 국유부동산 매각, 정치인·공무원 특권 축소, 공무원 감축 등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20년 재정수지 흑자 전환을 목표로 세웠다.
시장도 우호적 반응을 이어갔다. 도쿄증시에 상장된 브라질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인 노무라NF보베스파링크는 이날 장 초반 13% 급등해 7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회 보수주의와 자유경제 정책을 결합하겠다는 보우소나루의 공약에 대한 기대감이 지난 한 달간 브라질 증시의 보베스파지수와 헤알화 가치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증시가 10월 들어 요동치는 와중에도 보베스파지수는 9% 이상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시장의 호조가 일시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CNBC는 “브라질 증시 호조는 보우소나루를 향한 믿음이 아니라 좌파 패배에 대한 안도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그는 브라질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이슈들과 싸울 만한 태도와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당선으로 경제 외에 브라질 정치·사회 전방위에서도 변화가 예고됐다. 노골적으로 친미를 표방하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남미 지역 내 ‘자유주의동맹’을 추진하겠다며 대외정책 기조 변화의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