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여전히 위협받는 사법 독립

이재용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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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법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생긴 후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는지 싶다. 재판거래·법관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지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검찰은 이 의혹을 수사하며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정조준했다.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며 수사에 제동을 걸었고 ‘방탄판사단’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지난주 말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이제 ‘윗선’인 전직 대법관들과 대법원장이 조만간 검찰에 불려 나가 조사를 받을 신세가 됐다.

이 와중에 국회와 청와대는 삼권분립 원칙이 무색하게 사법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특히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부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특정 세력이 특정한 결론을 염두에 두고 특정 사건의 재판부를 직접 구성한다면 재판의 공정성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점도 문제다.


청와대 역시 사법부의 독립은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재판 결과가 모두 확정되는 대로 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발 더 나아가 “대법원이 빠르게 절차를 진행해주면 종료되는 때에 맞춰 사면·복권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을 해야 하니 재판을 빨리 끝내달라’며 청와대가 사법부에 재판 시기와 결과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페이스북에서 특정 법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특별재판부 도입을 촉구하는 등 사법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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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사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의 본질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정부가 특정 재판의 결과 및 시기에 영향을 미치려 압력을 행사하고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 등 반대급부를 챙기려고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결국 전 정부와 사법부에서 재판 독립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 ‘쓰나미급 태풍’으로 번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거래 의혹을 질타하며 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청와대와 국회가 오히려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법부가 위기라고 해서 사법 독립을 해치는 일들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법부의 환골탈태 역시 사법 독립의 기초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침묵이 안타까울 뿐이다. /jylee@sedaily.com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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