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떼고 복사하고 결재받고 모니터를 보면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대다수 직장인의 하루는 단조로운 업무로 가득 차있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로봇이 된 게 아닐까?’라는 피로가 몰려온다. 밀려드는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야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를 로봇처럼 일하게 만드는 업무들을 진짜 로봇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까? 절대적인 업무 시간이 줄어들 뿐 아니라 보다 사람은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도 함께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구글, 테슬라, 소니, 보쉬 등 세계적 기업들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최근 로봇자동화시스템(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RPA는 사람이 하는 일을 똑같이 따라 하도록 설계된 로봇 소프트웨어(SW)를 이용해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을 뜻한다. 단순하고 처리 절차가 분명한 반복 업무를 사람 대신 로봇이 처리해주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서 전세계 기업 내 재무담당 부서 73%가 RPA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도입률은 19%에 불과하지만 2년 안에 무서운 속도로 퍼져서 사무실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지난해 9월부터 사내에 로봇 30대가 있는 로봇룸을 만들고 RPA를 도입했다. 고객에게 이메일과 우편으로 발송한 청구서 중 반송된 건을 우체국 홈페이지에서 조회한 뒤 사내 관리시스템에 올리는 업무, ‘수취인 불명’으로 3회 이상 등기우편이 전달되지 않은 연체고객을 취합한 뒤 주소지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업무 등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들은 이제 RPA의 몫이 됐다. 21개 부서 44개 업무에 RPA를 도입하면서 줄어든 임직원들의 업무시간은 연간 1만 5,628시간에 달한다.
또 2008년 10월 31일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기반기술로 등장해 10번째 생일을 맞은 블록체인도 단순 업무를 줄이는 데 응용되고 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경우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개발해 지난 8월 특허 등록을 마쳤다. 홈페이지 화면 스냅샷의 값을 블록에 저장하고 3분 간격으로 각 노드(node)에서 새로운 스냅샷의 값과 과거의 값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이렇게 하면 해커들이 자기과시나 범죄수익을 목적으로 홈페이지를 위변조하지 않았는지를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다. 과거 관제요원들이 12시간 간격으로 국내외법인의 홈페이지 67개를 일일이 눈으로 모니터링 하던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다.
황보영종 현대카드 카드정보보안팀 대리는 “모니터링 시스템에 홈페이지 주소(URL)만 등록하면 간편하게 홈페이지 위변조 여부를 탐지할 수 있다”며 “(시스템에 업무를 맡기고) 남은 시간에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고민을 할 시간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2017년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형태를 7개로 분류했다. 이 중에서 △자료 수집 △자료 처리 △예측 가능한 육체노동 등 3가지를 자동화 가능성이 높은 업무형태로 꼽았다. 이 3가지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은 전체 노동시간의 51%에 달한다. 만약 기업들이 해당 업무를 자동화하면 직원들은 △조직 관리 △전문지식 적용 △이해관계 조율 등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성훈 현대카드 IT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세탁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세탁하던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을 시킨 것처럼 일상적인 업무를 기계나 로봇에 맡김으로써 여러 가지 효용이나 여유시간을 갖게 될 것”이며 “이러한 시도가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유진·이종호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