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기업 투자족쇄 안 풀면 벤처자금 물꼬 못튼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1일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창업기업들이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10억원인 소액공모 한도가 30억원과 100억원으로 이원화 형태로 상향됐고 청약 일반투자자가 50인 미만이어도 사모 발행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비상장 투자전문회사 제도를 도입해 변호사, 회계사, 금융투자 업종 종사자 등도 개인전문투자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있으나 투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벤처들에는 희소식이다. 지금보다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고 기회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요건 완화 정도로는 벤처들의 자금 갈증을 풀기에 역부족이다. 벤처에 자금 물꼬를 터주고 창업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확실한 방법은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다. 이스라엘이 창업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창업자들은 사업모델을 구상할 때부터 국내외 대기업에 파는 목표를 세운다. 정부도 이를 적극 장려한다. 2016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벤처들이 달성한 투자자금 회수(EXIT·엑시트)는 우리나라의 4배인 100건이 넘고 규모도 100억달러에 달한다. 엑시트에 성공한 창업자들은 이 자금을 활용해 또 다른 사업에 도전한다. 세계 최고의 창업생태계가 조성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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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경제력 집중이니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탓에 대기업들의 벤처 M&A가 쉽지 않다. 8월 공정위가 벤처지주사의 대기업집단 편입 유예기간 연장 등을 담은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핵심은 쏙 빠졌다. 재계가 벤처지주사 규제를 찔끔 손질하기보다 아예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허용을 요청했는데도 금산분리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CVC가 벤처 M&A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이들의 성과가 일반 벤처캐피털보다 좋다는 분석이 많지만 우리는 규제의 벽에 막혀 있으니 답답하다. 정권마다 쏟아낸 벤처활성화 대책에도 한국의 벤처생태계가 왜 정체상태인지 정부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의 투자 족쇄를 풀지 않으면 수많은 벤처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에서 사라지는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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