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일로를 걷던 미중 무역전쟁이 중대 변곡점을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 전화 통화에 나서면서 미중 간 대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역 합의에 이르기 위한 초안 작성을 장관들에게 지시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가운데 지금까지 연일 대미 비판을 쏟아내던 중국 매체들도 일제히 수위 조절에 나섰다. 미 중간선거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아르헨티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11월의 굵직한 글로벌 이벤트를 앞두고 양국이 국내외 민감한 정치·경제 이슈를 의식해 상대의 응수를 탐색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연일 맹공을 퍼붓던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은 오는 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집권 1기의 기로에 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하게 미중 관계를 뒤흔들 경우 예상치 못한 파장이 미 증시와 경제에 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지도부도 올 하반기 중국 최대 글로벌 이벤트인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와 공산당 핵심지도부 모임인 19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앞둔 상황에서 위안화 환율과 증시의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어 내부 단속과 경제안정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중 정상 간 전화 통화 이후 나온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발언은 이 같은 기류 변화에 한층 힘을 실어줬다. AP통신의 영상매체 APTN에 따르면 커들로 위원장은 1일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시 주석이 다음주에 무역전쟁과 관련한 화해의 제스처를 미국 측에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 주석이 중국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양국 무역 이슈와 관련해)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지 기대된다”면서 “다음주나 향후 열흘간인데, 어쩌면 작은 화해(a little thaw)가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커들로 위원장이 언급한 ‘작은 화해’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을 두고 진행되는 대화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우리가 좋은, 만족할 만한 합의를 얻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일부 관세를 철회할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그러려면 아주 만족스러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은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정전’ 신호를 보낼 미중 정상 간 합의 초안을 작성하도록 장관들에게 지시했으며 실무 차원에서 가능한 조항 작성을 시작하게 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에 강경 목소리를 냈던 중국 관영매체들도 양국 정상의 통화를 계기로 미국 비판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환구시보는 최근 한 달간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는 논평을 잇달아 실어왔지만 양국 정상의 전화통화 다음날인 2일에는 비판 논평을 싣지 않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양측의 물밑조율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양국 경제상황을 꼽고 있다. 중국은 증시가 2015년의 폭락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고 위안화 가치도 연일 급락해 달러당 7위안 붕괴를 위협했다. 장기호황을 누리는 미국에서도 애플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에서 향후 성장 둔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하는 등 무역전쟁 장기화에 따른 파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중국의 지적재산권 문제와 기술 탈취에 대한 양국 시각차가 크고 미국의 무역적자 이유에 대한 판단이 달라 양국 정상 간의 통화가 곧바로 무역협상 타결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대한 경계 목소리는 여전하다. 선제공세를 퍼부어온 미국은 실제로 대중 압박의 고삐를 완전히 풀지 않고 있다. 이날 미 법무부는 중국 국영기업인 푸젠진화반도체를 기술 도둑질 혐의로 기소했고 연방수사국(FBI)은 중국의 산업정보 수집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수사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주 뻔뻔한 계략”이라는 표현을 쓰며 중국의 기술 도둑질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법무부는 푸젠진화의 협력사인 대만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무엇보다 강경한 무역전쟁 맞대결을 펼쳐온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섣부른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가 국내에서 ‘패전 수장’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주요2개국(G2) 간 임시 휴전과 응수 타진 탐색전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두 정상이 11월 한 달간 지속될 신경전과 G20 회의 기간과 맞물린 정상회담에서 극적인 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양국의 무역전쟁은 이전보다 한층 격화할 수 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미국은 12월 초에 나머지 추가 2,670억달러 중국 수입품에 대한 전면 관세 부과 발표를 강행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