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경제민주화 법안을 본격 추진하고 나서면서 상법 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회 시정 연설에서 관련 법 처리를 당부했을 만큼 여권의 의지가 전례 없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의 투자의욕은 살리지 못하면서 해외 투기자본에 무장해제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도 여전히 반대 입장을 보이며 경영권 보호 장치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법 개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여당이 7개에 달하는 상법 개정안 원안을 고집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이견이 적은 부분부터 선택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여권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과 전자·서면투표, 집중투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크게 7가지 사안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소액 주주 권한을 강화해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한국당은 해외 투기 자본에 맞서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으면서 관련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세부 쟁점을 놓고도 의견은 첨예하게 갈린다. 한때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집중 투표제 의무화와 관련해 여야 의견 접근이 이뤄진 적도 있었으나 자회사 지분율 문제로 합의가 어그러졌다.
법사위가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통해 새 진용을 갖췄지만 이번에도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여상규 신임 법사위원장은 지난 8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이때 기업 활동마저 옥죄어서는 안 된다”며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사위 소속 정갑윤 한국당 의원도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업은 기업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심한 것은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며 “근본적으로 (여당이) 기업을 탈탈 털고 있는데 우리 경제 상황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법사위 바른미래당 간사를 맡고 있는 오신환 의원은 “상법을 개정해 좀 더 진일보한 경제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데는 근본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한국당에서는 경영권 보호 장치를 옵션으로 같이 하자는 입장인데 민주당에서 그걸 받을 수가 없다는 것 아니냐”며 절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의 절충점 모색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간 관련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올해 안에 ‘경제 민주화’ 입법 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협상 과정에서 전향적 입장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업 경영권 보호 장치에 반대하는 여당 내부 반발이 변수로 꼽힌다.
이 밖에도 재계에서 우려하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중 한 가지만 선택해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제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5월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개정 사안 7개가 전부 원안대로 통과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의 경우 3%로 제한된 대주주 의결권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등 제한 비율 상향이 절충안으로 검토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