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눈]'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의 딜레마

김상훈 시그널팀기자




“하락장세가 되면 국민연금 때문에 분명 사달이 날 겁니다.” 코스피 지수가 2,300선을 오가던 9월 11일. 기자가 만났던 한 공공 투자기관의 수장은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당시 국민연금이 손에 쥐고 있던 국내 주식의 평가금액은 123조6,000억원.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10월말 기준 1,361조원)의 10분의 1에 가까웠다. 상반기 수익률 0.9%를 기록한 국민연금이 하락장세에 손절매에 나서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이미 국민연금이 지난 6월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고 천명했던 상황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암울한 전망은 현실이 됐다. 2,300선에서 오르내리던 코스피지수는 1,900선까지 무너졌다가 2,000선을 간신히 회복했다. 당장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급락의 불을 댕겼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31일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증시 급락의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비중 축소 계획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 요청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연금이 소방수로 나서길 종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국민연금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수익률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대로만 가면 2057년 고갈된다는 경종이 울리고 있는 노후자금이지만 수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엔 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원인은 국내 주식 투자였다. 전체 자산 중 유일하게 -5.1%(8월말 기준)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자산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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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8%가량을 손에 쥐고 있는 ‘큰손’이다. 유래를 찾기 힘들다. 국민연금을 두고 ‘연못 속 고래’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연기금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맞춰 높은 수익률의 포트폴리오로 빠르게 조정했지만 국내 주식과 채권을 두 축으로 하는 국민연금의 자산배분은 연못 속에 갇힌 탓에 여전히 수익률이 낮은 ‘구식’이다.

주가 추락이 온전히 국민연금 때문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개혁과 규제혁파를 미룬 탓이다. 활력을 잃어가는 제조업을 먼 산 보듯 지켜만 본 게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해 당장 눈앞의 불을 끌 순 있다. 다만 국민연금을 동원하면 40년 남은 고갈 시기가 더 가까워진다는 기회비용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일 전주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국민연금이 연간 수익률을 3.55% 높이면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아도, 재정을 쏟아부을 필요도 없다는 분석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ksh25th@sedaily.com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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