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관료사회 "靑, 도 넘었다"...유출 핑계로 개편안 비판 덮나

휴대폰 압수의 절차적 적법성을 떠나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개편안을 마련 중인 상태에서 청와대가 특별감찰에 들어간 데 대해 공직사회에서는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8일 “‘소득대체율 인상’이 국정과제인데 보험료율 인상도 불가피하다 보니 셈법이 상당히 복잡하다”면서 “어떤 결론을 내도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단순히 정보 유출이 연금개혁의 판을 깼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안을 퇴짜놓게 된 배경을 사전 유출로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와 여당은 그동안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안이 정식 공개 전에 유출된 것은 8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자문안 이후 두 번째다. 그때도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를 높이고 연금 지급시기를 늦추는 내용의 권고안을 제도발전위가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회적 합의 없는 보험료 인상은 없다”고 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장관에게 “지금은 오히려 폭탄을 더 돌릴 때”라며 연금개혁을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에 대비해 보험료 인상 등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개혁은 불가피한 과제다. 보험료를 당장 올리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인 인상 계획 논의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와 정치권이 발을 빼면서 이번 연금개혁도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박 장관에 대한 경질설이 불거질 만큼 복지부 안팎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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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편안을 두고 정부와 청와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연금 ‘백년대계’에 대한 논의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단계마다 개편방향을 둘러싼 공방만 불거지면서 연금개편 자체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도 높아졌다. 정부는 당초 개편안을 9월 말까지 만들어 공개한 뒤 10월 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원칙에 따라 국회 제출시한을 11월 말로 미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연금개혁특위를 만들고 대국민 집중 여론 수렴을 거치기로 하면서다. 정부가 이번에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한 보험료 인상 초안은 총 33차례의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만든 안이었다. 하지만 결국 재검토 지시로 연내 제출마저 불투명해지게 됐다.

박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오는 20일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의견이 없으면 정부가 독자안을 다듬어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이달 말까지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회의론이 더 크다.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만큼 복지부 입장에서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다 시한에 맞춰 제출하더라도 알맹이는 빠진 ‘맹탕’ 개편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지난 9월 서울 지역 대국민 토론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국민들은 저마다 자기 입장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과 정부가 ‘사회적 합의’라는 허울 뒤에 숨을 게 아니라 공익을 위해 필요한 합의안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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