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잇따르는 문제 유출·생활기록부 조작…"고교내신 믿을 수 없어"

"내신 관리 투명성 강화하는 시스템 서둘러 갖춰야"

수시 축소하고 정시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커지는 추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사건과 관련해 12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경찰이 압수한 시험지와 암기장 등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사건과 관련해 12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경찰이 압수한 시험지와 암기장 등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숙명여고 전임 교무부장이 재직 당시 시험문제·정답을 빼돌려 자신의 쌍둥이 자매에게 준 부정 행위가 드러나면서 고등학교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구속된 이 학교의 전임 교무부장과 그의 두 쌍둥이 자매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경찰은 작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제외한 모든 중간·기말고사 때 문제가 유출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학벌 지상주의, 목적 제일주의가 빚어낸 산물이자 학교 교육의 ‘총체적 위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게 교육계 안팎의 공통된 분석이다.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서슴없이 부정 행위에 나서는, 도덕 불감증이 만연한 교육 현실에 대한 국민적인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교육계의 부정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서울의 한 고교 교사가 검사 아들인 학생의 점수를 올려주다가 적발됐다. 이듬해에는 서울의 사립고 교장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친분이 있는 학부모에게 빼돌린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교육 당국은 특별대책이라며 다양한 근절 방안을 내놨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입 관련 부정사건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 성남에서도 ‘숙명여고 시험문제·답안 유출’ 사건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사립고 교무부장이 2013∼2014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딸을 명문대에 보내려고 학교생활종합기록부를 조작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그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임의로 접속해 자신의 딸이 ‘학교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식의 허위사실이나 과장된 표현을 생활종합기록부에 기재했다. 이런 행위가 탄로 나면서 그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또 인천 서구의 한 고교 영어교사는 2014∼2015년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친척 학생에게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줬다는 의혹을 샀다. 이 학교 3학년생들이 의혹을 제기하자 이 교사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입건됐다.


지난 8월 전북의 한 고교에서는 한 여학생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학과 영어, 한국지리, 세계사 등 4개 과목 시험지를 훔친 사실이 드러났다. 교실 휴지통에 몰래 버린 시험지가 발견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여학생을 비롯해 이 사건에 연루된 4명은 자퇴서를 냈으며, 다른 학생들은 4개 과목 시험을 다시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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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전남 목포의 한 고교에서 시험문제가 사전에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시험 사흘 전 한 학생이 잠기지 않은 교사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에 저장된 ‘2018 중간고사 대비 모의고사 변형 문제’를 출력해 간 것이다.

내신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행평가 역시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적절한 기준없이 멋대로 점수를 준 교사들이 적지 않아서다. 대전의 한 고교 수학교사는 2016년 4등급 배점 기준을 무시하고 모든 학생에게 최고점을 부여했으며, 충북의 한 과학교사도 6개 반 208명 전원에게 수행평가 만점을 줬다. 강원 속초의 한 고교에서는 2014년 1학년 355명 전원이 특정 과목 수행평가 태도 영역에서 100점을 받았다가 도교육청 감사 때 적발됐다. 강원 양양과 대전의 고교에서는 결석한 학생에게 개근상을 줬다가 교육청 감사 때 적발됐다.

시험지·정답 유출, 학교생활종합기록부 조작, 수행평가 배점 기준 무시 등 고교 내신과 관련된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근절할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교육계 내부에서는 내신 관리 투명성을 강화하는 정밀한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교사들의 도덕성·책임성 강화, 학생들의 일탈행위 방지를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상철 부산교육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내신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게 안타깝지만 내신 비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신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일선 교육청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광주교육청 관계자는 “매뉴얼을 정비하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출제·시험지 보관·채점 등 단계별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교사들의 도덕성·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원론적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시를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12일 숙명여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능시험이 ‘깜깜이 학생부종합전형’보다 훨씬 객관적”이라며 “정시 확대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내신 성적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대학들의 우려도 높다. 계명대 강문식 입학부총장은 “내신 성적만 보고 학생들을 뽑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전체 틀을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건이 내신의 공정성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시험지·답안 빼돌리기, 학교생활종합기록부 조작 등 고교 내신을 둘러싼 도덕 불감증은 ‘사회적 문제’인 만큼 교육 당국과 교사, 학부모, 학생, 그리고 사회 전체가 나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나라인턴기자 kathy9481@sedaily.com

홍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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