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서양의 클라이언트라면 보다 요란한 디자인을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건축물 자체가 조용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준 덕에 달항아리의 미(美)를 품은 건물을 완성 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계획설계와 개념설계를 맡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오른쪽) 건축주와의 좋은 궁합이 좋은 건축물을 낳았다고 말했다. 그의 특기인 고전의 재해석, 단순함에서 오는 강렬한 건축은 한국에서 오히려 잘 수용됐다. 실시설계를 담당한 윤세한 해안건축 대표도 “건축의 언어는 통했다”며 “동서양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건축 언어가 적용됐기 때문에 서양적이기도 하고 한국적이기도 한, 건축의 원형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 느낄 수 있는 견고함과 단단한 아름다움은 세계적인 건축가 치퍼필드의 완벽주의의 산물이다. 설계는 물론이고 건물에 적용되는 모든 조명, 이정표, 심지어 문 손잡이까지도 치퍼필드의 설계사무소에서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가 필요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건축의 모든 요소가 서로를 지지하지 않으면 통합적인 느낌을 줄 수 없습니다. 실내 공간에서 어딘지 모를 편안함, 좋은 기분은 느끼게 하려면 천장, 바닥 등 모든 요소가 잘 조직돼 있어야 하죠. 사용자들은 의식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건축의 퀄리티를 체감합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이 바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입니다.”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강박’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치퍼필드는 최초의 설계 콘셉트가 끝까지 유지되고 완성도 있게 구현된데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이 과정에서 실시설계와 디자인 감리, 인허가를 맡은 해안건축의 역할이 중요했다. 윤세한 해안건축 대표는 “이번 작품에는 그동안 한국에선 없었던 디테일들이 많이 적용됐는데 이를 실현하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제였다”며 “처음부터 여러 차례 워크숍을 통해 기본설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검증과 대안제시를 통해 국내 여건에 맞게 실시설계안을 만들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출 콘크리트는 한번 잘못하면 되돌릴 수 없는 굉장히 민감한 작업이어서 시공사와 함께 테스트를 많이 했다”며 “디자인 팀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기본설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건축주, 설계자 그리고 시공 수준이 결합된 다시 짓기 힘든 수준의 훌륭한 작품이 나온 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