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로 성장한 판도라 주얼리. 수년 전 태국 방콕의 신공항 근처 제모폴리스공단에 입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종사자 수는 약 80명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지난해 기준 1만5,000명가량으로 늘어났다. 중국도 지난 1980년대 중반 선전에 100명 규모의 세공공장 3개로 시작해 현재 1,0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공장만 100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주얼리 생산 국가로 거듭난 홍콩도 1983년 한 호텔에서 개최한 주얼리쇼를 계기로 귀금속보석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해 2016년 귀금속보석의 수입액이 17조원, 수출액이 31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앞선 1976년에 최초로 익산(이리)귀금속공단을 설립해 한때 다이아몬드까지 연마해 수출했고 많은 고급 세공기술자들이 배출됐다. 하지만 정책당국자들이 주얼리를 사치소비품으로만 여겨 1990년까지 귀금속보석은 물론 그 원자재까지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해당 업종에는 대출도 제한됐다.
규모가 있는 업체들은 규제를 피해 모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나갔다. 해외 진출 기업들은 수천 명씩 현지인을 채용하며 회사를 키워가고 있고 지금은 오히려 한국으로 주얼리를 역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금은 사치품이 아닌 화폐 개념의 안전자산이다. IMF 당시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부동산 자산이 기존 가치의 10~30%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금 모으기에 동참한 국민들은 금을 빌려주고 3개월이 지나 2배의 가격으로 보상받았다. 금이 안전자산이고 곧 국가의 재산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2007년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재정경제부 등 8개 부처가 공동으로 마련한 ‘귀금속보석산업육성방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으나 이후 무산됐다. 이어 체결된 불공정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주얼리 산업의 수출길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었다.
업계는 연 매출 15조원, 종사자 20만명의 주얼리 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한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안’ ‘주얼리산업의 기반조성 및 유통관리에 관한 법률안’ 등의 입법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적극 지원해야 할 정부 부처가 ‘1970년대 국민정서’를 이유로 입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매우 유감이다. 하루빨리 최고의 세공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의 고급 주얼리 생산기지로 변모시키고 티파니·까르띠에 같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