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의 섬인 조도(鳥島)를 취재하기 위해 진도군으로 들어왔다. 육지에는 바람이 없었는데 진도로 들어오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의 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지나면서 바다 쪽을 바라보니 밀려오는 파도가 방파제와 부딪히면서 생긴 하얀 포말이 다시 바다 쪽으로 흩어졌다. 읍내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까지 바람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도까지 내려온 여정이 헛걸음이 되면 어쩌나 싶어 밤새 뒤척였다. 창문 밖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섬 동쪽에 있는 신비의 바닷길로 향했다. 전날보다는 파도가 많이 누그러든 것 같아 차를 돌려 진도항으로 갔더니 여객선은 항구에 정박해 있는데 대합실 문이 잠겨 있었다. 첫 배 운항시간이 지나고 한참 만에 매표소 문이 열렸다. 맨 앞에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여객선에 차를 실었더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파도가 높은 탓인지 화물칸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파도를 타고 바다를 헤쳐나간 지 40분 만에 배는 조도 창유항에 도착했다.
조도의 모섬 진도는 부속도서 350개로 이뤄져 있고 진도 남쪽에 있는 조도는 유인도 35개, 무인도 143개 등 총 178개 섬으로 이뤄져 조도 군도라 불린다. 조도를 찾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하조도 등대.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위치한 하조도 등대는 지난 1909년 2월 석유 백열등으로 불을 밝히기 시작한 후 1945년 8월 전기식 등대로 장비를 일신해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일대를 비추고 있다. 하조도에 등대가 세워진 것은 이 일대 섬 사이를 빠져나가는 조류가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도와 하조도 사이 물길은 서남해안에서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이 빠르다는 장죽수로(長竹水路)로 야간 운항에 안전을 기하기 위해 등대를 설치했다. 하조도 등대는 유인등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해상교통관제서비스(VTS)를 제공하기 위한 레이더 기지국이 함께 설치돼 있다. 창유항에서 해안가 외길을 따라 달려 도착한 하조도 등대는 해수면 위로 50m가량 솟아 있는 절벽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박길림 문화관광 해설사는 “조도는 ‘섬들이 새가 무리를 지은 것처럼 모여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며 “하조도는 상조도에 비해 면적이 넓어서 어미섬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부속 섬들은 거북·도마뱀·새 등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어 저마다의 모습을 딴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섬들을 보기 위해 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조도대교를 건너 도리산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게시판에는 “1816년 9월 5일 영국 이양선 라이러호의 함장 바실 홀(Basil Hall)이 조도에 상륙 후 도리산 정상에 올라 섬들을 바라보며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쓰여 있다.
도리산 전망대에서는 ‘세월호’ 사건으로 알려진 동거차·서거차도가 보였다. 박 해설사는 “동거차도 해역에서는 삼치가 많이 잡혀서 이를 일본에 보내고 그 돈으로 옷가지를 사오는 물물거래 교역이 활발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전망대의 낙조가 일품”이라는 박 해설사의 설명에 잔뜩 기대하고 왔지만 막상 전망대에 올라보니 바다와 섬들은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해가 기울어 수평선으로 접근하자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아마도 먼지의 장난인 듯싶었다. 그래도 바다에 접근한 저녁 해는 주위를 붉게 물들였다. 오전까지 배를 항구에 묶어뒀던 바람결이 다시 느껴졌다. 옷깃을 헤치고 스며든 바람에 한기가 느껴져 전망대를 내려와 차에 올랐다. 밀폐된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겨울이 가까이 온 탓인 듯했다. /글·사진(조도)=우현석객원기자
◇가는 길
▲대중교통:SRT수서역-목포역(시내버스 200번)-목포종합버스터미널(시외버스)-진도공용터미널(농어촌버스)-진도항정류장-조도 창유항(여객선)
▲승용차:경부고속도로(88.6㎞)-서천공주고속도로(58.9㎞)-서해안고속도로(148.3㎞)-고하대로-진도대로-진도항길(팽목삼거리)-진도항(여객선)-창유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