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게임 과몰입' 규정, 제대로 따져봐야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2019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국제질병표준분류(ICD) 제11차 개정판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신규 질병으로 등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즉 게임에 과몰입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현상을 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정신의학계를 중심으로 WHO의 방침을 받아들여 게임을 질병코드로 분류하고 관련 법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신의학계 입장에서는 게임장애가 정신질환으로 규정되면 진료비 청구와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게 되므로 새로운 수익원이 생겨나는 셈이다. 얼마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게임장애를 중독 질병으로 분류하고 관련 법을 개정하고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게임 업계와 게임 학계는 ‘게임 과몰입은 의학적 의미의 중독이나 질병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게임 산업과 이용문화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어져 산업 성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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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게임백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게임 시장은 전년 대비 4.4% 성장한 12조830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4년 10조원을 달성하고 4년 만에 12조원을 돌파하며 어떤 산업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콘텐츠 수출의 57%를 게임 산업이 차지할 만큼 대표적인 콘텐츠 수출 효자 산업으로도 평가받는다. 90%나 되는 스마트폰 보유율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은 모바일로 정보 검색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소비를 여가 활동의 일환으로 즐기고 있다. 이제 게임은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보편적인 일상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새로운 융합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기존의 전통예술 분야와 결합해 예술적 가치를 가진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하는 등 게임은 문화 콘텐츠로 무한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 물론 일부 사행성 게임의 폐해와 게임 과몰입 문제에 따른 사회적 고통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의학적·사회적 합의 없이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청소년층에서 ‘게임 선용군’이 늘어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게임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옳은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또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연간 수조원의 중독물질을 해외에 수출하게 되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먼저 게임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행성에 대한 우려로 지탄받는 확률형 아이템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생태계 구축과 혁신투자에 나서야 한다. 게임에 대한 부모들의 걱정과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에 걸쳐 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협력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 관련 부처와 공공기관도 머리를 맞대고 게임 과몰입에 따른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에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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