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동정책,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라] "획일적 규제 안돼"...美·獨처럼 노사합의로 근로시간 결정을

<하> '주52시간' 기업에 자율권 줘야-정책 개선 어떻게

66년 유지 근로시간 단번에 16시간 깎아 부작용

탄력근로 1년·선택근로 확대 등으로 숨통 틔우고

26개서 5개로 줄어든 특례업종 대상 확대 필요도




국회는 지난 2월 근로기준법을 고쳐 법정 근로시간과 연장 근로시간을 합친 1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했다. 휴일 근로시간을 1주 연장 근로시간에 포함해 법원과 정부의 혼란을 걷어내고 장시간 근로를 해소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도리어 더 큰 혼란의 불씨가 됐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64~68시간으로 유지되던 근로시간 한도가 단숨에 16시간 깎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올해 7월1일 법 시행 전 정부의 6개월 계도기간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기업들이 범법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짧은 시간을 버는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여권은 부랴부랴 기업이 일정 기간 일감에 따라 근무를 자율 조정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했지만 급조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로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하는 유연근무제도를 미국·일본·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본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주 52시간 근로제도 사실상 정부가 밀어붙인 것”이라며 “국가가 획일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할 수는 없다. 정부는 큰 기준만 정하고 노사가 합의해 자율적으로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들은 최근 기업들의 전반적인 유연 근무 확대 요청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26일 경영계에 따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한시적 인가연장근로의 활성화다. 이 제도는 특별한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근로시간을 총량(현행 52시간)보다 연장하는 것이다. 현재는 재난 시기에만 인가되는 이 제도를 경영상 필요한 경우에도 허용해달라는 게 경영계 요구다. 사용자 단체 관계자는 “정유업체 정비, 조선 업계 시운전, 통신망 긴급복구 등의 작업은 탄력근로제를 활용해도 근로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시간 제한에 예외를 두는 제도는 독일과 프랑스·일본에서도 시행 중이다.



기업들은 또 탄력근로제와 선택적근로제 단위기간을 모두 1년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선택적근로제는 1일 8시간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근로자가 1주 평균 40시간 범위 안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제도지만 단위기간이 1개월에 그친다. 실제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노사가 서면 합의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재량근로제 확대도 경영계의 요구사항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재량근로제 대상 직무를 법령으로 한정하고 있다”며 “현장에서는 방송·언론·연구직 등 현행 대상 업종 외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처럼 재량 근무가 필요한 직종이 느는 만큼 노사 합의를 통해 자율 결정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경총 등은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이 제외되는 특례업종도 노선버스 운송업 같은 일부 업종에 다시 확대시켜달라고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기존 26개였던 특례업종은 지난 법 개정에서 수상·항공운수업 등 5개로 대폭 줄었다.


기업들의 요구안처럼 해외 주요국은 유연 근무를 폭넓게 인정하는데다 노사의 근로시간 결정권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박지순 고려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모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최대 1년이다. 미국은 압축 근무, 전일제 근로자의 일시적 파트타임화 같은 다양한 방식의 근무제를 운용한다. 연장 근로시간도 법률이 아니라 노사 협약으로 정한다. 독일 역시 법률 대신 노사 단체협약으로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고 법으로 정한 1주 48시간 이상 초과 근무도 업황에 따라 인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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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유연근무제 확대에 전면 반대하고 있다. 노동계는 “주요국이 보다 유연한 근로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이들에 비해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긴 한국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근로자는 1인당 평균 연 2,024시간을 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759시간보다 265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OECD 회원 37개국 중 멕시코(2,257시간), 코스타리카(2,179시간)에 이은 3위다. 다만 한국의 근로시간은 2010년 2,146시간에서 점진적으로 줄며 OECD 평균과 격차를 좁히는 추세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내 장시간 근로의 핵심 원인이 낮은 노동생산성에 있다고 본다. 노사 자율에 맡겨 근로시간을 유연화해도 장시간 근로 상황이 더 악화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3달러로 통계가 집계된 OECD 회원국 22개국 중 17위를 기록했다.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47.8달러)과 비교해도 크게 낮다.
/이종혁·변재현기자 2juzso@sedaily.com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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