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檢이 외압에 굴복"… 문무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눈물로 사과

수사 조기 종결 등 검찰 책임 인정하며 연방 눈물

"검찰이 진상 규명했다면 인권침해 조치 있었을 것"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만나 사과문을 읽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만나 사과문을 읽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을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문 총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검찰을 대표해 직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 검찰은 지난 1989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특수감금행위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는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 때문에 수사를 조기 종결하는 등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그간 받아왔다.

문 총장은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피해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는 불행한 상황이 초래된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때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졌을 것이고, 인권침해에 대한 적절한 후속조치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재판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과정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사과에 앞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다 가슴 아픈 사연에 연방 눈물을 쏟았다. 사과문을 읽으면서도 목이 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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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북구에 운영된 일종의 수용시설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5년 부랑인을 강제수용시키기 위해 만든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설립됐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부랑인 단속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도 시설 운영의 배경이 됐다.

형제복지원은 정부 지원을 최대한 타내기 위해 무고한 시민까지 잡아와 매년 3,500여 명을 가둔 뒤 박 원장의 개인 목장과 운전교습소·울주작업장 등의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또 시설 안에서 구타·학대·성폭행이 빈발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2014년 기준으로 12년 동안 시설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된 공식 사망자 수만 551명에 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암매장되거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의 만행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박 원장을 특수감금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내무부 훈령에 따른 정당행위였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이유였다. 박 원장은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만 인정받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산 뒤 2016년 6월 사망했다.

문 총장은 앞서 지난 20일 박 원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위법이 있었다고 보고 이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 신청했다. 문 총장은 “오늘 자리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피해자 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고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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