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여전히 불씨 남은 세‘ 컨더리 보이콧’…은행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미국이 국내 은행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정하고 있다는 루머가 여의도 증권가를 강타했다.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후폭풍은 상당하다. 계속되는 북한 송금 이슈에 더해 이란 리스크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은행권에선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셔터스톡사진=셔터스톡



지난 10월 30일 여의도 증권가에 ‘미국 재무부가 국내 시중은행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정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미국발 세컨더리 보이콧은 사실상 금융시장 퇴출을 의미하기에 시장은 매우 격하게 반응했다. 같은 날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4~5%대 폭락을 기록하며 몸살을 앓았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이나 금융기관까지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날인 31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미국의 국내 시중은행에 대한 경제적 제재 풍문 관련’ 보도자료를 내며 긴급진화에 나섰다. 금융위는 보도자료에서 “관련 내용을 국내 은행들에 문의한 결과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며 “자본시장조사단은 풍문 유포과정을 즉각 조사해 위법행위 적발 시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발표에도 각종 커뮤니티에선 ‘국내 은행에 문의한 결과만으로 향후 미국 제재 여부를 판단하기는 무리’라며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날 미국 재무부가 “민간 부문과의 접촉을 향후 제재 조치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사회 민간 부문과 정기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 ‘북한 이슈’가 루머 배경

루머는 북한 관련 이슈가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최근 ‘단순 전달도 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면서 ‘미국이 국내 은행을 제재할 거라는 소문이 돌더라’ 같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버전부터 금융위가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미국 정부가 북한 송금과 연관된 은행에 경제적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추진할 것이며, 미국 재무부에서 2018년 10월 12일 한국의 은행들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처럼 상세한 버전까지 몇 가지 종류의 루머가 등장했다. 상세한 루머 대부분은 제재 이유로 북한 관련 업무를 들었다.

국내 은행이 북한 관련 업무로 제재를 받을 것이란 루머는 그동안 심심찮게 제기되어왔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은행권이 발 빠르게 경제협력 태스크포스 등을 구성해 대응했지만, 한편으론 미국의 대북제재가 견고한 상황에서 은행권의 이 같은 대응이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존재했다.

7월 시작된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밀반입되는 과정에 국내 은행이 연루됐다’는 설이 그 시작이었다.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위장돼 반입된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8월 중간조사 발표를 거쳐, 9월 미국 재무부가 2개 국책은행인 산업·기업은행과 KB국민·신한·NH농협·우리·KEB하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컨퍼런스 콜을 통해 ‘대북제재 준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 증폭되었다.

10월 들어 미국이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관련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10월 4일 미국 재무부 OFAC(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해외자산통제실)는 김정은 명의의 대북제재 리스트에 ‘세컨더리 제재 주의(Secondary Sanctions Risk)’ 문구를 명문화 했다. 미국은 과거 북한 거래와 관련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한 사례(2005년 방코델타아시아은행·직접 제재 대상은 아니었지만 ‘주의보’ 조치를 받고 파산했다)가 있었지만, OFAC가 명문화를 통해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금융당국, 루머 진화에 뻘뻘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10월 10일 금융정보분석원 주관 ‘은행권 준법감시인 간담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는 준법감시인들을 중심으로 내부 긴장을 높이고 대외 안정 메시지를 주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같은 달 15일 미국의소리(VOA·Voice of America) 방송이 ‘9월 미국 재무부의 7개 한국계 은행 접촉은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 경고라고 봐야 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다시금 세컨더리 보이콧 공포가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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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후인 10월 30일 세컨더리 보이콧 루머가 여의도 증권가를 강타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공포가 점점 커지다 보니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명문화 조치 이후 금융정보분석원 간담회가 바로 열리면서 진화가 되는 듯했는데, 뒤이어 VOA 보도가 나와 다시 기름을 부은 꼴이 됐죠. 타이밍이 나빴어요. 하지만 루머가 돈 다음 날 금융위가 즉각 조치에 나서면서, 또 미국 재무부가 확대해석 하지 말라며 직접 선을 그으면서 지금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모습입니다.”

10월 30일발 루머는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국내 은행들의 세컨더리 보이콧 우려는 여전하다. 7월 불거져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산 석탄 밀반입 사건을 두고 ‘문제 업체에 신용장을 개설해 준 은행이 어디인지’ 아직도 논란이 한창이다. 8월 중간조사 발표에서 관세청은 ‘석탄 현물을 중개수수료로 사용해 은행 거래가 없었다’고 했지만, 10월 국정감사에선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송금한 사례를 확인했다’고 말을 바꿨다. 관세청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지금도 관여된 국내 금융기관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이 최근 대북제재 리스트에 ‘Secondary Sanctions Risk’ 문구를 넣었다. 자료:OFAC 웹사이트 캡처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이 최근 대북제재 리스트에 ‘Secondary Sanctions Risk’ 문구를 넣었다. 자료:OFAC 웹사이트 캡처


◆ 이란 리스크로 관심 이동

은행권 일각에선 미국의 이란 제재 본격화에 따른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도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30일 루머가 돌았을 때 제일 먼저 A은행이 떠올랐습니다. 2011년 1조 900억 원대 이란 자금 불법유출 사건에 연루돼 현재까지도 미국 당국으로부터 최종 무혐의 판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죠. 루머이니만큼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겠거니 하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데, 다른 은행들도 ‘혹시나’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미국은 2010년 이란 원유를 수입하는 제3국과 미국 기업이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제3자 제재 조항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란 원유 수입량이 많은 한국은 ‘예외국’으로 지정돼 국내 은행들은 미국 승인 아래 특별 결제 시스템을 통해 이란과 거래할 수 있는 일부 통로가 마련됐다. 이 시스템은 거래 대금은 묶인 채 무역 상품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한국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복원된 최근에도 다시 예외국으로 지정돼 같은 방식의 거래를 2019년 5월까지 할 수 있게 됐다.

A은행은 2011년 미국 시민권자인 정 모 씨가 가짜 무역 서류로 이란 원화계좌에서 거액을 반출하는데 연루돼 현지 당국과 한국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A은행이 정 씨에게 속아 업무를 처리해준 것으로 보고 2013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미 당국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지만 경과된 시간이나 한국 검찰 조사 결과를 참고할 때 무혐의 결론을 내릴 확률이 높다. 다만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벌금 등의 일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10월 30일발 루머에 A은행이 주목받은 이유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최종 무혐의 판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 외에도 최근 미국이 2015년 이란 핵협정을 깨고 제재를 복원하면서 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맞게 되면 폐점을 고려할 정도로 후유증이 크다 보니 북한 관련 거래든 이란 관련 거래든 조심은 하겠지만, A은행 사례처럼 의도치 않은 사고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말한다. “30일 루머가 돈 직후 자체 점검 등을 통해 지난 송금 거래 내역을 전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은행이 그랬을 거예요. 이슈가 된 북한 거래 내용은 물론,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란 관련 거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란과의 원화 무역결제 업무는 허가된 은행이 별도로 하고 있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지만, 이란인 계좌 개설은 다른 은행에서도 가능해 ‘혹시나’ 싶었던 거죠.”

금융위는 시장에 불안 심리를 고조시킨 루머 유포자에 대한 처벌 의지를 강하게 밝히고 있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풍문 내용에 관해선 금융정보분석원을 통해서도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뜬소문일 뿐이라는 보도자료 배포 이후에도 세컨더리 보이콧 관련 문의가 계속 올 정도로 불안 심리가 상당해 금융당국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 자본시장조사단에서 루머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경로를 통해 전파됐는지 확인 중인데, 조사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적발되면 관련 절차를 거쳐 엄중히 제재할 계획입니다.”

김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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