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에 일명 ‘구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이 정식으로 국내 정부에 규제를 도입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글로벌 IT기업들의 서버를 현지화하는 법안은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미국 당국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서버 현지화 문제는 FTA 규정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반박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과 고려대 미국법센터, 사단법인 오픈넷은 28일 서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국가간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은 상상도 못할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이런 흐름에 방해되는 요소는 우리를 가두고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 정부에 데이터 현지화 규제를 피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인사말은 푸시핀더 딜런 주한미대사관 경제 공사참사관이 대독했다.
이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 등 최근 국내 구글세 징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개정안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글로벌 IT기업들이 반드시 국내에 서버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치권에선 이를 통해 국내에서 연 5조원의 매출을 거두지만 세금은 200억원 수준밖에 납부하지 않는 구글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진보성향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슈아 멜처 선임연구원은 발제를 통해 “데이터 현지화는 세계화된 인터넷을 발칸화(Balkanization·여러 개로 고립, 분열되는현상)된 인터넷으로 줄어들게 만든다”라며 “결국 더 많은 비용이 소요돼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 FTA 등 국가간 무역 협정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서버를 현지화하는 법안은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라며 “한국은 자유무역을 지향하고 있는데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박훤일 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 러시아 등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국내 서버에 보관하라는 것은 있어도 국내 제출법안처럼 트래픽의 현지화를 의무화하고 위반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례는 없다”라며 “디지털 강국으로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되는데 국격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변재일 의원실은 “글로벌 IT기업들의 국내 서버 설치 의무는 한미 FTA ‘현지 주재 의무 부과 금지’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라며 “해당 규정은 인적 요소에 대한 조건 부과의 금지에 해당하며 물적 설비에 대한 조건 부과는 위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라며 “막대한 수익에 맞는 세금을 거두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기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