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CJ헬스케어 매각, KCC컨소시엄의 미국 모멘티브 인수, CJ그룹의 슈완스 인수, IMM인베스트먼트의 블루홀 투자 등 올해 굵직한 인수합병(M&A) 거래에 깊숙이 관여했다. M&A 법률자문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왔지만 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DICC) 매각 관련 송사는 올해 그 어떤 업무보다 이 변호사 개인에게 큰 울림을 줬다.
지난 2월 두산인프라코어 DICC 매각 실패 이후 두산그룹과 재무적 투자자(FI) 간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2심이 진행됐다. 이 변호사는 FI의 변호를 맡았다. 29일 서울경제 시그널과 만난 이 변호사는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결과를 낙관할 수 없었다”며 “판결문을 듣는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고 전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FI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소송이 자본시장 업계에 미친 파장은 컸다. 드래그얼롱(Drag Along·동반매도청구권)에 관한 국내 법원의 첫 판단인 만큼 향후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소송이었다. 드래그얼롱은 FI 등 투자자가 대주주의 지분 전부나 일부를 자신의 지분과 함께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1심 재판부가 두산의 손을 들어줬을 당시에는 드래그얼롱 조항이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FI들이 드래그얼롱을 통한 투자 회수 방안을 계약서에 마련해놓았음에도 대주주나 기업이 매각 작업에 협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지를 남겨서다. 두산과 FI가 이 문제로 다투는 동안 두산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동부대우전자는 FI의 드래그얼롱 행사 요청을 수용해 회사의 경영권을 대유그룹에 매각했다. 회사의 상장(IPO)이 어려워질 경우 드래그얼롱과 콜옵션으로 FI가 엑시트하고 기존 대주주 역시 계약서의 합의에 따라 협조하는 게 일반적인 사례다. 두산 측은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사건 이후 M&A 딜 협상 시 계약서에 당사자들의 의사는 더욱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계약서의 동일한 문구를 두고 계약자 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면서 “협상 과정에서 모호한 문구가 없도록 당사자들의 의사를 계약서에 문구로 자세하게 반영하는 관행이 잡혔다”고 설명했다. FI의 지위도 높아졌다. 두산그룹이 FI와 계약을 한 2011년 만해도 대기업은 계약에서 우위에 있었다. ‘을’의 입장이었던 FI들도 최근에는 투자 회수에 필요한 요건들을 강력히 요구하는 추세다. 최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대해 FI가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압박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M&A 거래와 소송을 두루 경험하면서 이 변호사의 법률 자문도 한층 탄탄해졌다. 계약서 문구에 따라 향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송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한 만큼 미리 협상 전략을 촘촘히 세울 수 있었다는 것. 이 변호사는 “제로섬게임보다는 타협점을 찾아가는 협상을 이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클라이언트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조윤희기자 choy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