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멕시코 89년만에 좌파 대통령 취임]오브라도르 "멕시코서 신자유주의는 끝났다"

공공일자리 230만개 창출 등

'친서민 복지정책'에 초점

대규모 건설사업 백지화 등

反시장 행보에 우려 목소리

중앙銀, 성장률 전망 낮춰

무역서도 민족주의 앞세워

트럼프 美우선주의와 대립각

1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시티 조칼로광장에서 열린 취임 축제에서 멕시코 토착민족 지도자로부터 받은 지휘봉을 들어올리며 연설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연합뉴스1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시티 조칼로광장에서 열린 취임 축제에서 멕시코 토착민족 지도자로부터 받은 지휘봉을 들어올리며 연설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연합뉴스



“성장 대신 부정한 수익만 부풀린 ‘신자유주의’의 종식을 선언합니다.”

1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하원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멕시코 대통령이 내뱉은 취임 일성은 강하고 선명했다. 그는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정부가 남긴 부패·타락 등 재앙에 가까운 유산을 뒤집을 것”이라며 “그 변화는 깊고 근본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브라도르는 지난 7월 멕시코 대선에서 국가재건운동(MORENA), 노동자당(PT) 등 중도좌파 정당으로 이뤄진 ‘함께 역사를 만들어갑시다’ 연대의 통합 후보로 나서 53.2%를 득표하는 압승을 거두며 당선됐다. 그의 취임으로 멕시코에는 89년 만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멕시코 국민이 그를 선택한 것은 자국 내 만연한 부패와 빈곤·불평등·폭력 등을 뿌리 뽑기를 원하는 기대심리 때문이었다. 이 같은 민의에 화답하듯 신임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신자유주의 맹점을 짚으며 ‘친서민 복지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이날 오브라도르는 노령자 은퇴연금 증액, 대학생 교부금 신설, 공공일자리 230만개 창출, 농민지원 확대 등 공공지출 확대를 약속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은 증세 없이 고위공무원 임금 삭감 등을 통해서만 이뤄질 것이라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그는 재정 긴축의 일환으로 자신의 월급도 전임 대통령들의 40%만 받겠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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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민들은 일단 좌파 대통령이 몰고 올 변화에 기대감을 거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론조사 결과 그의 지지율이 67% 전후에서 고공행진하고 있으며 멕시코 국민 10명 중 7명은 그가 부패와 가난·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당시 경제안정과 외국 자본유치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보이며 좌파 정부에 대한 시장 불안을 불식시켰다. 실제 그의 당선 소식에 멕시코 페소화와 증시는 일제히 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에서는 그의 ‘본색’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브라도르는 10월 자체적으로 시행한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취임 후 3분의1가량 건설이 진행된 130억달러(약 14조6,000억원) 규모의 멕시코시티 신공항 건설을 취소하기로 해 재계와 시장의 우려를 샀다. 건설사업 백지화는 외국인투자가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직접투자는 물론 장기 성장잠재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공지출 확대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세금 인상 없이 각종 부패 척결과 재정 긴축만으로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FT는 “재정정책을 어설프게 만져 외려 국가 부채 증가와 경제 불안을 가속화시키지 않을지 걱정하는 시선이 있다”고 전했다. 9월 이후 멕시코 증시는 18%가량 급락했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이 멕시코 신임 대통령의 ‘진짜 색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미(對美) 무역관계도 시장에 긴장을 초래하는 요소다. ‘멕시코 퍼스트’ 구호를 앞세워 민족주의 정치 성향을 띠고 있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무역 부문에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지난달 30일 미국·캐나다·멕시코 정상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대체하기 위해 공식 서명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지지 입장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비준 문제나 이행 연기 등 변수가 생기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우려 속에 멕시코 중앙은행은 새 정권 출범에 즈음해 시장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대통령 취임 사흘을 앞두고 발표한 분기 물가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2.4%로 지난 2·4분기 당시 전망치(2.0~2.6%)보다 낮춰 제시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시장의 두려움을 의식하듯 취임식에서 “멕시코에 투자하는 것은 안전할 것”이라며 “중앙은행 독립성도 보장하는 등 투자환경을 잘 조성해나가겠다”고 항변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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