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 달러화 패권에 맞서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전쟁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휘둘리는 것이 기축통화 및 독립적 결제 시스템 부재 때문이라고 보고 유럽이 주도하는 금융통화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집행위원회가 에너지, 원자재, 항공기 제조 등 전략적 분야의 결제통화로 유로화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청사진을 5일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FT가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EU는 달러화로 결제하는 에너지 관련 계약을 유로화 결제 방식으로 바꾸도록 유도하고 금융거래에서도 유로화를 매개로 한 거래를 장려할 방침이다. EU 차원의 결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파생상품 거래에서 유로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작업도 함께 추진된다. EU는 또 국제 지급수단으로 유로화를 채택하는 아프리카 국가에 기술지원과 함께 유로화 표시 차관을 확대할 계획이다.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이 달러화를 무기로 앞세우며 금융 및 무역시장에서 유럽의 경제적 자주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기준 세계 외환보유량 가운데 달러가 62.7%를 차지한 반면 유로는 20.1%에 그쳤다. 결제시장에서도 달러 비중이 39.9%로 유로(35.7%)를 앞섰다.
특히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란 제재를 밀어붙인 것이 EU 각성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달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EU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란을 국제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스위프트는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뒀지만 거래의 42%를 차지하는 달러화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U는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의 수출입 결제를 처리할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해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