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부산 북구 한 임대 아파트에 사는 A(78)씨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을 청했다. 집이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누울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집안의 냄새는 아파트를 뒤덮었고, 주민들의 불만도 속출했다. 구청의 끈질긴 설득 끝에 사회복지 공무원, 자원봉사자 54명이 3일에 걸쳐 벌레와 사투를 벌이며 A씨의 집을 청소할 수 있었는데, A씨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75ℓ 봉투 100개와 100ℓ 봉투 50개를 가득 채웠다.
부산 북구의회에서는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저장강박증 의심 가구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부산 서구, 중구, 해운대구가 뒤이어 조례를 제정했다. ‘저장강박증 가구’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가구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지자체는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쓰레기집’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봉사자들에게는 교통비와 목욕비 등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한편, 거동이 불편해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고미야시키(ごみ屋敷·쓰레기 저택)‘가 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유다. 독거노인이 계단·문턱 같은 장애물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거나, 고독사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쓰레기와 함께 발견되는 것이다.
2014년 교토시는 주인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시가 나서서 현장 조사와 쓰레기 철거를 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했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인의 안전을 보살피겠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처리해주거나 23%가 위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관 앞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시에서 처리해주거나 정해진 수거일이 아니더라도 별도의 쓰레기통에 미리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서울 영등포구가 발표한 ’저장 강박 가구 개입을 위한 사례관리 지침서‘를 보면 2016년 7월 기준 t 단위로 쓰레기가 쌓여있는 집은 서울에만 312곳에 이른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저장 강박 가구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지원 조례는 봉사자에게 저장강박증 의심 가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예산과 치료를 제공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저장강박증’이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마음의 병’인만큼, 지자체의 도움과 함께 이웃주민의 따뜻한 손길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정선은 인턴기자 jse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