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박병대(61)·고영한(63)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전 법정에 출두했다. 전직 대법관이 범죄 혐의를 받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 심사는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고 전 대법관 심사는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각각 담당한다.
오전 10시30분 심사를 10여 분 앞두고 연달아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심경과 책임 소재를 묻는 취재진에게 모두 입을 굳게 다문 채 법정으로 향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3일 두 전직 대법관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대법관이 겸직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같은 자리의 후임을 맡았다.
검찰은 앞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받는 사법농단 관련 범죄 혐의가 개인 결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상급자인 박·고 전 대법관의 지시 또는 관여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구체적으로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2015년 4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직접 만나 강제징용 사건 처리를 논의한 정황도 포착하고 수사를 지속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이 전 실장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다.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 등을 받는다.
두 전직 대법관은 수차례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를 맡는 영장판사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임민성 부장판사와 명재권 부장판사 모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9~10월 차례로 영장전담 재판부에 합류했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검사 출신으로, 지난 9월 고 전 대법관의 자택과 박 전 대법관의 자택 등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심사는 당초 무작위 전산 배당에 따라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맡겨졌으나 박 전 대법관의 배석판사를 지낸 이 부장판사가 회피 신청을 해 임 부장판사와 명 부장판사에게 재배당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 여부는 6일 밤늦게 또는 다음 날 새벽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정 인턴기자 jnghnji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