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근 2년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노조 세를 불리고 있다. 지난 2016년 말 95만4,500여명이었던 한국노총 조합원은 올해 말 기준 99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민주노총은 73만4,300여명이던 조합원이 85만명으로 약 12만명 늘며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내년이면 양대 노총 합계 200만명 노조원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노동 정책이 쏟아지면서 노조 설립도 붐이 일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억눌려 있던 노동계는 노조 무풍지대로 불리던 외국계 회사들에까지 진출했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공공 부문 노조 설립도 급증세다.
그간 대기업 계열사인 시스템통합(SI) 업체를 제외하고는 노조가 없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올 4월 20세가 된 네이버가 현 정부 들어 첫 노조 설립 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어 노조 설립 바람이 게임 업계로 옮겨붙으며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노조가 민주노총에 새로 설립을 신고했다. 최근에는 KT에 기존 노조와 별도 노조가 새로 설립됐고 카카오와 11번가·대상정보통신에도 노조가 설립됐다. 글로벌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에도 지난해 새로 노조가 생겼다. 제약 업계도 노조 설립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한국노총 산하 한국민주제약노조에 새로 5개 회사가 지부를 설립해 가입했고 민주노총에도 한 곳이 새로 가입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국내외 할 것 없이 설립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현재 또 한 곳의 제약사에서 설립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한’ 노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에서는 민주노총 산하 대한불교조계종지부가 올해 9월 탄생했다.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과 기초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청원경찰들도 노조를 결성했다. 대학원생·방송작가 노조도 올해 출범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탄생한 회계사·일반직 노조가 “회계사를 더 뽑지 말라”며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는 최초의 변호사 노조가 나왔다. 한 공기업의 경우 청소·조경직도 노조를 결성했다. 해당 공사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인데 노조까지 결성할 줄 몰랐다”면서 “하루짜리 파업도 벌이면서 세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식당 조리직원 노조가 출범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 소속인 이들은 음식 조리를 하지만 현대차 노조와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부산에서는 4월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부산이 창사 11년 만에 노조를 설립했다. 저비용항공사(LCC)에 노조가 결성된 것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에 이어 세 번째다. 에어부산은 오는 27일 상장을 앞두고 있어 노조 결성이 상장 흥행에 타격을 주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대기업 중에서는 사실상 50년간 무노조였던 포스코에 한국·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각각 생기며 최정우 신임 포스코 회장의 개혁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마저 올 상반기 소규모 노조가 설립됐다.
우후죽순 노조 설립은 현 정부의 친노동 정책 바람 아래 불이 붙었다. 대표적인 게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협력사들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설립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정부를 상대로 강경투쟁을 벌이는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공공 부문 노조의 연맹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해 조합원이 17만명이었으나 올해 8월 기준 3만3,000여명 늘어난 20만3,881명을 거느리게 됐다. 명실공히 국내 최대 산업별 노조다. 신규 조합원 가운데 비정규직은 2만944명에 이른다.
노동 정책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노조 설립을 승인하며 노조 증가에 기여했다. 이들은 법적으로 명확한 근로자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이 “사실상 사용자와 종속관계에 놓여 있는 근로자”라며 노조할 권리 등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고 고용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미 보험설계사 노조(생활금융노조)와 택배기사 노조(택배연대노조)가 출범했다. 서울시에서도 대리기사 노조가 인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동계 요구를 적극 수용하면서 주저하던 근로자들이 잇따라 노조 설립에 뛰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조활동을 세게 해야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겠구나 하는 인식이 커지는 게 잇단 노조 설립의 원인”이라며 “법치를 세워야 할 정부가 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공약대로 내년 중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 현행 법률을 고쳐 ‘노조할 권리(단결권)’를 확대하면 노조 증가세가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은 이 같은 노조 증가세로 인한 갈등 비용을 우려하는 처지다. 국내 중소기업의 한 임원은 “노조할 권리도 좋지만 불황 속에 악전고투하는 기업들은 노조로 인한 갈등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의 행렬은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혁·양사록기자 울산=장지승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