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맘’ 김정연(37·가명)씨는 최근 둘째 낳기를 포기했다. 첫째 이유는 돈이다. 어린이집은 공짜고 9월부터 아동수당도 받지만 앞으로 들어갈 교육비까지 생각하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부부 월급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둘째는 미안함이다. 세 살배기 아이와 평일에는 두어 시간 함께하고 주말에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다. 이렇게 못 챙겨 줄 바에 차라리 한 명에게 집중하기로했다. 정부가 7일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은 이처럼 아이를 낳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돈’과 ‘시간’을 부모에게 안겨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출산·양육비는 66만원이다. 이 같은 부담은 저출산을 부추기는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우선 만 1살 미만 아동에게 사실상 무상의료를 제공한다.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을 대폭 깎고 임산부에게 지급하는 국민행복카드 지원액을 기존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높여 의료비로 쓰도록 하는 식이다. 2025년에는 이 혜택을 초등학교 입학 전 모든 아동으로 확대한다. 아동수당은 내년부터 만 6살 미만 모든 아동에게 지급한다. 육아휴직 중에 내는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 최저 수준인 월 9,000원으로 조정된다. 직장어린이집 의무 설치기준도 상시근로자 500명에서 300명 이상으로 낮추고, 다자녀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준은 ‘3자녀 이상’에서 ‘2자녀 이상’으로 변경을 추진해 수혜층을 대폭 넓히기로 했다.
부모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 대책도 담겼다. 내년 하반기부터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1시간 단축할 수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은 현행 유급 3일에서 10일로 늘고, 장기적으로는 육아·학업·훈련 등 생애주기별 여건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도입한다.
세계 최고 수준 노인 빈곤에 대처하고자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한편 은퇴 후 삶을 ‘잉여’에서 ‘활력’으로 바꾸는데도 집중했다. 현재 25만원인 기초연금은 2021년까지 30만원으로 인상한다. 퇴직연금 중도인출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중도해지 사유를 엄격하게 해 되도록 연금을 수령하도록 유도한다. 신중년 적합직무를 지정해 사업주에 고용장려금을 지원하고 공익활동관련 노인일자리는 2022년까지 80만 개로 확대한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추진하던 과제도 재구조화했다. 저출산 고령화 관련 기존 194개 과제 중 35개의 역량집중과제를 선정해 전체 예산의 약 60%인 약 26조원(2018년 기준)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이번에 ‘출산율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애초 3차 저출산 대책의 출산율 목표는 1.5명이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중 낳는 아이 수)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였고 올해는 0명대에 진입이 예상된다. 무작정 숫자만 맞추겠다고 접근하기보다는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 삶의 질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삶의 질이 좋아지면 자연스레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세종=빈난새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