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지난 6일 정부 예산안(470조원 규모)에서 5조원을 삭감하기로 했지만 지역구 민원 예산을 다시 증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원안 사수를 고수하다 한발 물러난 민주당도, 20조원 감액을 외치다 5조원 삭감으로 합의를 본 한국당도 결국 감액분을 지역구 예산으로 챙긴 셈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남북경협과 일자리 예산 감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당 텃밭인 대구경북(TK)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크게 늘리면서 두 당이 일자리 예산과 TK SOC 예산을 주고받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7일 본회의를 열어 일명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비롯한 190여개의 법안과 ‘한미FTA 개정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데 이어 8일 새벽 차수를 변경해 470조원 규모의 수정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을 상정해 표결하기로 했다. 당초 7일 오후4시 예정됐던 본회의는 예산안에 합의한 민주당·한국당과 이에 반발하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막판 대치하며 오후7시로 연기됐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과반(150명)이 확보되자 바로 본회의를 개의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전날 470조5,000억원의 정부 안에서 5조2,000억원을 삭감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지역 민원성 예산 등과 관련이 깊은 SOC 예산 등을 약 4조5,0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두 당이 수정 예산안에 합의하면서 일종의 담합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증액은 4조5,0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4조5,000억원에는 양당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사업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야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대거 확보하면서 SOC 예산이 크게 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액된 SOC 예산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지역구(세종시)의 국립세종수목원 예산,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지역구(서울 강서을)의 9호선 증차 예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늘어난 SOC 예산 상당수는 한국당 텃밭인 TK 지역에 집중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경환 평화당 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이 밀실에서 무엇을 주고받으며 야합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며 “한국당이 SOC 지역구 예산에서 1조5,000억원을 요구했다는 말이 들린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SOC 사업 몰락으로 TK와 부산경남(PK), 강원, 호남 등 일부 지역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SOC 예산의 대폭 증액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증액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내년 의원 세비도 공무원 평균 임금 인상률인 1.8%와 연동돼 오르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각종 경비 등을 포함한 의원 연봉은 올해 1억4,994만원에서 2019년 1억5,176만원으로 182만원(1.2%) 인상된다. 국회는 2013년부터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비를 동결해왔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자동 인상액을 깎지 않았다.
한편 본회의에서는 음주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통과됐다. 개정 도로교통법은 음주운전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운전면허 정지와 취소 기준을 강화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팽팽하게 맞섰던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은 교육위원회 간사 협의를 열어 접점을 모색했지만 끝내 합의가 불발돼 법안 상정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