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최고의 ‘핫 플레이스’ 중 하나였던 부산 ‘아난티 코브’.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바다와 연결된 이국적인 풍경의 이곳 대형 인피니티풀의 화장실 벽에는 예상치 못한 대형 글귀가 써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놀러 온 방문객들이 비장미 넘치는 윤동주의 서시에 어리둥절할까 봐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순수한 마음과 진정성으로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시에 담긴 간절한 마음 그대로 아난티 코브가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편한 마음으로 놀러 오는 리조트에 어울리지 않는 엄숙하고 진지한 글귀가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아난티 코브 곳곳을 둘러보고 나면 ‘이곳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이러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남해·가평·부산 등에서 고급 리조트를 잇따라 성공시킨 이만규(사진) 아난티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공비결은 값비싼 설계나 인테리어가 아니라 진정성과 완성도”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한다”며 “건물이 아닌 ‘아난티’라는 브랜드가 오래 남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마을 같은 고급 리조트로 차별화=이 대표가 지난 15년간 해온 프로젝트들은 편안함·안락함과 같은 일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하나 똑같지 않다. 성공을 자기 복제하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2002년 사업을 시작한 후 아난티 남해(옛 남해 힐튼&스파 리조트), 아난티 금강산, 아난티 클럽 및 펜트하우스 서울(경기도 가평), 아난티 코브(부산 기장) 등 총 다섯 건의 주요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현재는 여섯 번째 프로젝트의 착공을 앞두고 있다.
첫 프로젝트인 아난티 남해. 그는 이 장소를 “운명처럼 만났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부터 남해군청에서 리조트로 개발하기 위해 투자유치 활동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남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다는 것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남해는 과거 1급 유배지일 정도로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이죠. 지인의 얘기를 듣고 현장을 가보니 안락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운명처럼 여기다 싶었습니다.”
그는 흔한 리조트 건물을 세우는 대신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한눈에 동선이 들어오지 않는, 올수록 새로운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산책할 수 있고, 밥 먹을 데도 있고, 구경할 거리도 있고, 놀 곳도 있는 ‘마을’을 꾸미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국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스타일의 리조트와 최초의 해안 코스 골프장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뒀다. 이때 설계를 담당했던 민성진 소장은 이후 아난티의 모든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고 있다.
첫술에 너무 큰 성공을 거둔 탓일까. 그의 두 번째 역점작인 아난티 금강산은 회원 모집까지 끝내고 오픈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악화된 남북관계로 문을 닫아야 했다. 이 골프장은 동해 바다와 금강산 절경을 감상하며 라운딩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긴 파 6 홀, 그린에 공을 올리기만 하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홀인원 그린’ 등 다른 곳에는 없는 골프 코스로 꾸며 화제가 됐다.
갑작스러운 중단으로 이곳에 투자한 돈 약 900억원이 고스란히 묶였다. 일생 최대 위기였을 법도 한데 그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아난티라는 브랜드를 이때 처음 만들었으니 어쩌면 가장 큰 것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개장하게 된다면 골프장뿐만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에도 변화를 줄 생각이다. 그는 “소수의 관광객이 아닌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보다 많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확장하고 싶다”며 “폐쇄적이기보다는 개방적인 장소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리조트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후 가평 리츠칼튼CC를 인수·리모델링한 아난티 클럽 서울, 순수 회원제 고급 리조트인 펜트하우스 서울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성공 궤도에 들어섰다. 그리고 부산 기장에 문을 연 호텔(힐튼) 및 회원제 리조트 아난티 코브로 소위 ‘대박’을 내며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리조트 아닌 라이프스타일 플랫폼=흔히들 이 대표를 고급 리조트 업계의 성공한 디벨로퍼라고 얘기하지만 그는 스스로 부동산업이나 숙박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만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치 쓰타야 서점이 더 이상 책을 파는 곳이 아니듯 아난티도 숙박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다른 유명 호텔들보다 CJ·분더샵과 같은 회사들이 어떻게 독창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지 연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곳이 바로 아난티 코브다. 대형 서점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이터널 저니’는 부산 앞바다의 풍광과 연결된 인피니티풀, 바닷가 산책길, 특색 있는 가게들과 함께 아난티 코브를 명소로 만든 주역이다. 주제별 북큐레이션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연사들과 함께하는 북토크, 밤새 책을 읽을 수 있는 심야책방, 키즈 클래스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투숙객뿐 아니라 부산 지역 주민들이 여가를 즐기는 곳이 됐다.
최근에는 미니바와 룸서비스를 결합한 ‘테이스티 저니’를 론칭했다. 이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천편일률적인 미니바가 장식장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에서 남다른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테이스티 저니는 트렌디한 세계 각국의 수제 맥주와 유럽·미국·일본 등에서 공수한 스낵, 셰프가 조리하는 신선하고 건강한 ‘배달’ 메뉴들을 외부와 비슷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서양의 온천문화가 결합된 워터하우스, 다른 곳에는 없는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특색을 더했다. 그는 “아난티는 한번 왔다 가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사람들이 다시 찾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독창적인 콘텐츠의 힘은 주효했다. 힐튼 부산은 지난해 오픈 이후 비수기를 포함한 연평균 객실점유율이 80%대를 기록하고 있다. 사드(THAAD) 갈등으로 다른 호텔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다. 또 일반적인 리조트 기업이 등기분양 시 매출이 일시적으로 오르고 그 외에는 저조한 데 반해 아난티는 운영매출이 분양매출보다 큰 선순환 구조로 들어섰다.
그는 매출보다 우선하는 게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름이 곧 브랜드가 아니다”라며 “한국에 가치를 가진 브랜드는 의외로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설가가 갑자기 떠오른 영감에 일필휘지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쓰면서 꾸준히 완성도를 높이듯 아난티도 매일매일 디테일을 고치면서 운영의 완성도를 꾸준히 올려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난티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부동산이 아니라 브랜드”라며 “100년 동안 남을 좋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He is...△1970년 서울 △199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96년 공군 중위 제대 △1998년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 경영관리팀 △2002년 대명개발㈜ 이사 △2004년~ 아난티(옛 에머슨퍼시픽) 대표이사 △2011년~ 중앙관광개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