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인터뷰] 조명민 밀리그램디자인 대표 "발달 장애인 배려하는 디자인 늘려갈 것"

"주위 소음부터 치료사 복장까지

예민한 환아에겐 모든 것이 고통

인테리어·화장실 픽토그램 등

눈높이 맞춰주면 치료효과 커져

자폐증 첫아이 육아 경험 살려

20곳 넘는 복지관에 디자인 적용

사회 일원으로 살 수 있게 돕고파"

조명민 밀리그램디자인 대표./사진제공=밀리그램디자인



“몸이 불편한 신체장애인들의 요구 사항은 사회 곳곳에 반영돼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신체의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사회적 배려에서 소외된 측면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나 표식이 그들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조명민(50·사진) 밀리그램디자인 대표가 10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일반인에게만 유용할 뿐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면서 “복지관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하고 표식을 넣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연구해 디자인하고 실제로 의료기관이나 복지관 등의 건물에 구현하는 디자이너다. 발달장애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공간을 바꿔나간다.

조 대표가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에 주목하게 된 것은 첫아이를 낳고부터다. “아이가 두 돌 반쯤 지났을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감각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걸 발견했어요. 비장애인들과 환경을 느끼는 방식이 다른데 대부분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디자인돼 있으니 제 아이 같은 친구들은 상당히 괴로운 거죠.”


아이를 데리고 복지관에 갈 때면 늘 마음이 아팠다. 환경이 낯설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는 20분간 울다가 고작 15분 정도 치료를 받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조 대표는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 바깥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 치료선생님이 입은 옷의 복잡한 패턴 등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고통이 될 수 있었다”며 “효과적으로 아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입장에서는 불편하지 않으니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도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바꾸면 치료 효과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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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3월 밀리그램디자인을 설립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양천·원광·성동·강북복지관을 포함해 서울에만 20곳 이상의 복지관에 밀리그램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 1층에 들어서면 여자화장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빨간 바탕의 문에 하얀 동그라미로 꾸며진 여성용 표식 덕분이다. 손잡이 옆 다소 낮은 높이의 벽면에도 여자화장실 문구가 적혀 있다. 직접 디자인하고 적용한 작품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사람, 발달장애인들은 이를 보고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조 대표는 “복지관의 주된 이용객인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 완성한 화장실 픽토그램(그림문자)”이라고 설명했다. 양천복지관 로비 입구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와 코끼리에서도 그의 손길이 묻어난다. 그는 “장애 아이들이 한쪽 벽에 그린 작품과 비슷한 느낌으로 정글 테마를 살려 꾸몄다”고 소개했다.

조명민 밀리그램디자인 대표가 서울 양천구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 내 화장실에 적용한 픽토그램. 빨간 바탕에 하얀 동그라미가 눈에 띈다./백주연기자조명민 밀리그램디자인 대표가 서울 양천구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 내 화장실에 적용한 픽토그램. 빨간 바탕에 하얀 동그라미가 눈에 띈다./백주연기자


서울 중랑구 신내동 원광장애인복지관의 인테리어도 조 대표가 맡았다. 한 곳은 민무늬 벽으로, 다른 한 곳은 줄무늬가 그려진 기둥으로 상반되는 두 공간을 만들자 발달장애 아이들은 본인의 특성에 따라 원하는 공간에 모여들었다. 예민한 아이들은 줄무늬 기둥 쪽에서, 둔감한 아이들은 민무늬 벽 쪽에서 시간을 보내며 안정을 찾았다.

올해는 재단법인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제19회 여성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아직 스타트업이라 매출은 많지 않지만 조 대표에게는 확실한 비전이 있다. 놀이치료실이나 복지관·체육관 등 어느 곳에 가더라도 발달장애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꿈이다. 그는 “발달장애인이 갖는 특수성을 고려해 이들이 조금이라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이를 위해 더 많은 복지관·의료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대표 디자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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