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화하고 협조하겠습니다. 원장님들, 유치원 폐원하지 맙시다.”
이덕선 신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사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총연합회엠더블유(MW)컨벤션센터에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밝힌 입장이다. 지난달 1만 명을 서울 광화문에 집결시키던 한유총 지도부가 위세를 누그러뜨리고 돌연 ‘정부 협조, 폐원 만류’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이 이사장의 대의원대회 내부 비공개 발언과 비교해 분석한 결과 이는 사실상 한유총의 ‘양면전술’에 가까웠다. 언론에는 온건한 입장을 보여줬지만 그들끼리 모인 자리에선 “정부 감사기준 받는 대신 우리 것을 만들자”거나 “폐원 통로를 마련하겠다”며 교육당국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발언이 이어진 것이다.
우선 이 이사장은 교육 당국의 감사에 대비한 자체 감사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제8대 회장으로 당선돼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사립유치원에 맞는 회계감사 매뉴얼을 한유총에서 자체적으로 만들겠다”며 “완성하는 대로 각 원장들에게 보낼 테니 그걸 받아서 쓰시면 된다”고 말했다. 유치원 원장들이 지역 교육청이 실시하는 감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유총에서 회계감사 대응매뉴얼과 기준을 직접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뜻이다.
이 이사장은 “정부 요구대로 감사를 받되 합당한 기준에 따라 받겠다는 뜻”이라며 “회계사와 법률가 도움을 받아 유치원에 필요한 회계감사기준을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혹시 교육청에서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한유총에서 이거 줬다, 한유총 본사하고 따져라’라고 하라”며 대응 지침도 알려줬다.
총회에 참석한 또 다른 한유총 관계자도 “현재 교육청이 별다른 기준 없이 감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회계사와 전문가를 동원해 사립유치원에 맞는 감사기준을 만들 생각”이라며 “지금 교육부가 내 놓는 감사기준으로는 유치원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치원 폐원에 대한 속내도 기자들에게 밝힌 것과 달랐다.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유치원장들을 향해 “유치원은 우리의 인생이었다”며 “명예가 떨어진 채 폐원하지 말고 같이 노력하자”고 했다. 그러나 정작 대의원대회에서는 ‘폐원 유치원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직업의 자유가 있다”며 “폐원을 결심한 원장들이 너무 고통받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통로를 마련하는 게 한유총이 할 일”이라고 했다.
한유총 지도부는 이른바 ‘박용진 3법’에 대항해 자체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이 이사장은 “시설사용료는 투자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이기 때문에 입법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사립학교와 사립유치원도 다른 점이 워낙 많아 통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박용진 3법을 막는 거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개정안을 이끌어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서울경제가 입수한 ‘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 해산과 예산 처리의 건’을 보면 한유총은 이날 비대위를 해산하면서 남은 예산을 “박용진 3법 저지 활동목적에 맞게 국회활동·입법활동·광고활동 등에 사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조만간 역대 이사장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설치하고 정관도 개정해 이 같은 공약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총회 하루 전인 10일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폐원 시기를 학기 말로 엄격히 통제하고 교육감 승인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힌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이 이사장은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이 불거진 지난 10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돼 활동했으나 이사 자격을 갖추지 않고 곧바로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아 민법 및 자체정관을 어겼다는 교육청 지적을 받았다. 한유총은 이날 대의원대회를 열고 “반대하는 사람은 손 들라”고 한 뒤 객석에 반대표시가 없자 그대로 이 후보자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날도 이 이사장을 이사로 선출하는 절차를 건너뛰어 법 위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2일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에 공익법인팁과 감사팀 관계자 7명을 투입해 불법행위 실태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