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정치외풍에 흔들리는 한국 과학계...국제 공동연구에도 불똥튀나

국제이슈 비화 'KAIST 사태'

미국 연구소 반박 이어 네이처도 기사화

국제연구에서 정치적 리스크 배제 못해

14일 이사회, 학산이냐 봉합이냐 분수령

KAIST 교수협의회 등 "공정조사" 촉구

신성철 KAIST 총장이 지난해 10월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4차 산업혁명 성공 방정식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경제DB신성철 KAIST 총장이 지난해 10월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4차 산업혁명 성공 방정식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거취를 둘러싼 정부와 과학기술계 간 공방이 국제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소개되면서 앞으로 국제 공동연구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정치외풍에 흔들린다는 이미지가 형성되면 과학기술 외교와 민간 국제교류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어서다.

네이처는 13일 ‘총장을 연구비 유용으로 고발한 것에 저항하는 한국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마크 자스트로 네이처 기자는 신 총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검찰 고발과 직무정지 요구가 ‘정치적 숙청(political purge)’이라는 의견이 과학기술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조사 방식을 비판하며 그를 퇴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총장의 부당 송금처로 지목된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전날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미국 에너지부와 연구소의 절차를 따랐다”고 반박하면서 이미 국제이슈로 비화할 조짐을 보였다.


과기정통부 산하의 한 기관장은 익명을 전제로 “신 총장의 연구비 횡령과 배임 혐의를 놓고 정부가 치밀하게 따지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며 “‘한국은 과기계도 정치 흐름에 좌우된다’는 인상을 해외에 주게 되면 공동연구에서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계의 한 연구자도 “해외와 공동 국책 연구를 할 때 상대국이 정치적 리스크를 들어 파트너로 삼는 것을 꺼릴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에너지, 우주·항공, 생명공학, 로봇, 인공지능 등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국제연구에 일정 부분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내 과학기술계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인사에 대한 소위 ‘찍어내기’가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과학기술계 수장급을 대상으로 일괄사표를 제출받아 선별 수리했고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따로 관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조무제 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임기철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 등이 석연찮은 이유로 임기 도중 사퇴했다.

따라서 14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서 열리는 KAIST 이사회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고 역으로 봉합의 수순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결과에 상관없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신 총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사회는 일단 신 총장을 제외한 9명 중 5명만 찬성하면 직무정지 안건이 통과된다. 과기정통부·기획재정부·교육부 국장이 참여하고 있어 정부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오나 악화된 여론이 변수다. 이사진은 이장무 이사장을 비롯해 KAIST 교수와 명예교수,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부교수, 삼성전자 고문, 변호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40대 이사 3명은 젊은 층을 원했던 과기정통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난 6월 선임됐다.



◇KAIST 이사진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이사장)

·강석중 KAIST 명예교수


·박수경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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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원 DIGIST 부교수

·정칠희 삼성전자종합기술원 상근고문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대표 변호사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국장

·양충모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

*신성철 총장은 제척사유로 투표권 없음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과기정통부는 이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며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DGIST 감사과정에서 신 총장이 재임할 때(2011년 2월부터 2017년 2월) 한국연구재단과 LBNL에 제출한 다른 내용의 신청서와 계약으로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아 이 중 22억원을 LBNL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횡령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KAIST 이사회에 총장 직무정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이날 LBNL에 관해서는 한 발 빼는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손승현 과기정통부 감사관은 “과기정통부는 ‘DGIST-LBNL 용역계약이 미국 DOE(에너지부)와 LBNL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한 바 없다”며 “LBNL이 보유한 고가의 XM-1 현미경의 무상 사용이 허용되지 않은 부분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양측 간 협약서 위조나 이중계약 여부에 대해서도 주장한 바 없다며 물러섰다. 자칫 부실감사를 자인하는 듯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신 총장 징계건에 대해서는 “미국 에너지부와 LBNL 규정에 의해 검토, 승인됐다고 하더라도 DGIST는 국가계약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한편 교수 310명의 서명을 받아 이날 성명서를 발표한 KAIST 교수협의회 이승섭 회장은 “신중한 절차와 충분한 소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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