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문 앞의 야만인들-개와 늑대의 시간

김정곤 시그널팀장

김정곤 팀장



‘문 앞의 야만인들-RJR 내비스코의 몰락’. 세계적인 사모펀드(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지난 1988년 성공한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의 이면을 파헤친 책이다. 두 명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100건이 넘는 인터뷰를 통해 두 달 동안 벌어진 인수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KKR은 RJR 내비스코를 당시에는 생소했던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인수했다. 회사를 현금이 아닌 부채로 인수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 성과를 통해 기업가치를 올려 매각하는 방법이다. ‘문 앞의 야만인’으로 묘사됐던 KKR은 이후 미국 증시 상장을 거쳐 장기 투자하는 PEF의 대명사가 됐다.

오래전 읽었던 ‘문 앞의 야만인들’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자본시장의 주축인 PEF 시장을 담당하면서부터다. 국내 PEF 시장은 바야흐로 황금기다. 2004년 12월 ‘경영참여형 PEF’ 제도가 도입되고 몇 번의 관련법 정비를 거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성장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경영참여형 PEF 시장은 60조원 수준으로 일부 PEF는 글로벌 PEF와 경쟁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토종 PEF 운용사인 MBK는 아시아 1위, 글로벌 26위에 이름을 올렸다. MBK의 투자 자산은 17조원에 달해 재계 순위로 따지면 LS·대림그룹(20조원)에 이어 19위다. 전문투자형 PEF는 2016년 공모시장을 추월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31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PEF 시장은 내년에 더 성장할 것이다. 정부는 PEF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 시장을 키우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영에 참여하려면 지분 10%를 보유해야 하는 이른바 ‘10% 룰’을 폐지하고 PEF 설립 기준도 현재의 49인 이하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해 규모를 키운다. 시장 상황도 PEF에 우호적이다. PEF 업계에서는 내년 경영 환경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업 매물이 쏟아져 큰 장이 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계열사 매물 역시 계속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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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 시장 활성화의 또 다른 측면은 자본시장을 지배하던 게임의 법칙이 바뀐다는 점이다. 강성부 펀드의 한진칼 지분 매입은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신호탄이었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언제든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엘리엇 등 외국계 PEF의 공격에 노출돼 있던 국내 기업들이 토종 PEF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방어에 나설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오는 2019년은 ‘문 앞의 야만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첫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내년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날이 어두워져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을 때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 mckids@sedaily.com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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