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글한 탓…재측정하자” 윤창호법 통과에도 정신 못차린 음주 운전자들

1시간여만에 3명 단속, 2명은 면허정지

음주운전자 “알코올 가글 때문” 부인도

훈방운전자 ‘윤창호법’ 시행시 정지수준

경찰 “습관적 음주운전자 여전히 많아”

12일 오후10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IC 인근에서 서초경찰서 교통 경찰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서종갑기자12일 오후10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IC 인근에서 서초경찰서 교통 경찰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서종갑기자



“지난해나 올해나 음주운전자 단속 건수는 비슷합니다.”

1999년부터 20년째 서울 서초경찰서 교통과를 지킨 ‘베테랑’ 김철식 교통안전계 외근4팀 반장은 경광봉과 음주측정기를 손에 든 채 무심히 말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장에서는 운전자들의 인식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12일 서초경찰서 교통과 경찰관들이 경부고속도로 서초나들목(IC) 인근에서 진행한 음주운전 단속 현장을 동행했다.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평일이라 음주운전 단속 건수가 적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불과 1시간 만에 면허 정지 2명과 훈방 1명 등 3명이 단속에 걸렸다.


동절기여서 귀가가 빠른지라 평소보다 이른 오후 10시로 예정된 음주단속을 앞두고 김 반장은 단속 장소를 고민했다. “서초 IC가 좋을 것 같아요. 송년회를 하느라 강북 쪽에서 술 한잔 걸치고 강남으로 넘어오는 분들이 많거든요.” 김 반장은 그간 경험을 살려 단속 장소를 정했다. 곧이어 팀원 5명은 순찰차 3대에 나눠타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경찰관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강남 방면 1차선 도로에 곡선형으로 라바콘을 세우고 순찰차 2대를 정차해 퇴로를 막았다. 단속 시작 10분만에 첫 음주 운전자가 적발됐다. 종각역 일대에서 연말 모임을 갖고 귀가 중이던 민모(38)씨였다. 음주 측정 결과 민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48%였다. 0.002% 차이로 면허 정지를 간신히 피해 훈방 조치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0.05~0.1%는 면허 정지, 0.1~0.2%는 면허 취소, 0.2% 이상은 면허 취소에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형 범죄다.

그러나 민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윤창호법’에 따르면 면허정지 수준이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면허정지 기준은 0.03~0.08%다. 훈방 조치를 받은 민씨는 경찰 권유를 받고 대리기사를 불러 자리를 떠났다. 김 반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만취 음주운전이 많았지만 요즘은 단속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마시는 운전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초경찰서 교통경찰관이 음주측정기로 한 음주운전 의심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한 결과 면허정지 수준인 0.052%가 나왔다./서종갑기자서초경찰서 교통경찰관이 음주측정기로 한 음주운전 의심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한 결과 면허정지 수준인 0.052%가 나왔다./서종갑기자


30분 뒤 회색 아우디 차량을 탄 이모(28)씨가 적발됐다. “정말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는 경찰 질문에 눈이 살짝 풀린 이씨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가글을 했다”고 발뺌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두 번가량 입을 헹구도록 한 후 음주 측정을 했다. 측정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052%로 면허정지 수준이었다. 0.002% 차이로 면허 정지가 나오자 이씨는 “0.05% 이하면 훈방이 맞느냐”고 재차 물어보다 “운전하다 졸려서 계속 가글을 하고 눈에도 뿌렸다”며 재측정을 요청했다. 이에 경찰이 “호흡 측정은 1회만 가능하고 원하시면 채혈 측정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자 이씨는 잠시 망설이다 채혈 측정에 응했다. 이씨는 곧장 순찰차를 타고 채혈 측정을 위해 지정 병원으로 이동했다. 채혈을 하면 2주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병원 기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를 맡긴 뒤 결과가 나오면 경찰 처분이 나온다.


기자가 “가글을 한 후 알코올이 측정되기도 하느냐”고 묻자 김 반장은 “20년 동안 교통경찰을 했지만 가글을 했다고 알코올 수치가 나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잘라말했다. 술을 마셨는데 잡아떼기 위해 둘러된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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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날 무렵 BMW를 타고 온 김모(41)씨가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곁으로 다가가자 술 냄새가 훅 끼쳤다.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4%로 면허정지에 해당했다. 음주 여부를 묻는 경찰 질문에 김씨는 “30분 전에 맥주 두 잔 정도 마셨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음주운전 진술서를 작성하기 전 김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음주운전 단속을 마친 경찰 중 3명은 바로 순찰을 나갔다. 2명은 교통안전센터에서 출동대기했다. 김 반장은 센터에서 단속 내용을 정리하며 음주운전 단속에 나서는 일선 교통경찰의 고충을 토로했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실제 단속 현장에선 차가 조금만 밀려도 경찰에게 ‘뭐 하는 짓이냐’며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 반장은 “단속으로 음주운전자가 걸러지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초경찰서 교통경찰이 지난 12일 밤 10시 무렵 경부고속도로 서초IC 인근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서종갑기자서초경찰서 교통경찰이 지난 12일 밤 10시 무렵 경부고속도로 서초IC 인근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서종갑기자


일선 교통경찰들은 ‘윤창호법’ 시행을 앞두고 습관적 음주운전자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김 반장은 “음주운전은 유독 상습범이 많다”며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으로 처벌이 더 강화되면 이들도 경각심을 가져 음주운전 단속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음주운전 처벌이 한층 강화된다. 개정 도로교통법은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 시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운전면허 정지와 취소 기준을 강화했다.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 시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운전면허 정지 기준은 현행 혈중알코올농도 0.05∼0.10%에서 0.03∼0.08%로, 취소 기준은 0.10%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됐을 때 면허 재취득이 제한되는 기간(결격 기간) 기준도 높아졌다.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 운전면허가 취소된 경우 결격 기간 3년이 적용되는 기준은 현행 3회 이상에서 2회 이상으로 내려간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해 운전면허가 취소된 경우의 결격 기간을 5년으로 한다’는 조항도 새로 들어갔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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