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8월3일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고 인도를 향해 출발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우여곡절 끝에 10월12일 중미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다. 중간에 선원들의 폭동 조짐이 보이자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 내 머리를 잘라도 좋다”는 배수진을 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이날을 ‘콜럼버스데이’라고 부르며 국경일로 경축하지만 유럽인의 아메리카 원주민 살육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실제 두 번째 항해기인 1495년 초에 콜럼버스 일행은 원주민을 노예로 팔기 시작한다. 아메리카에는 없던 천연두 바이러스마저 퍼져 수많은 목숨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1502년 5월 마지막 항해에 나서 1504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까지 네 번에 걸친 콜럼버스의 대항해는 일방의 희생만이 따를 뿐이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이 꿈꾸는 ‘우주 대항해’는 이와 다르다. 내년이면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처음으로 달을 밟은 지 50주년이 되지만 우주개척의 역사는 인류에게 미래 세상을 꿈꾸게 한다.
실례로 스페이스X가 ‘우주 인터넷 구상’인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망 구축에 나서는 것을 들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스페이스X가 스코틀랜드 투자회사 베일리기퍼드에서 5억달러를 투자받기로 해 이것이 우주 인터넷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구 저궤도에 수백 개 군집위성을 올려 오지까지도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을 서비스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주 인터넷 계획은 미국의 인공위성 벤처기업인 원웹도 추진하고 있다.
구글은 15m 크기의 폴리에틸렌 풍선을 지구 20㎞ 상공의 성층권에 띄워 지구 구석구석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하는 ‘프로젝트 룬’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받고 통신장비와 비행용 컴퓨터, 고도조절기를 갖춰 와이파이를 제공하게 된다.
우주여행은 이미 현실화되는 추세다. 스페이스X는 오는 2023년 우주선에 민간여행객을 싣고 달 궤도를 도는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118m 크기의 초대형 재사용 우주선 ‘빅팰컨로켓(BFR)’을 개발하고 있다. 1호 승객으로 낙찰된 일본의 마에자와 유사쿠(패션·음반 사업가)는 “6~8명의 예술가·건축가·디자이너와 다른 창의적인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이 여행은 4∼5일이 걸릴 것”이라고 소개했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은 발사비가 한 번에 6,200만달러선이지만 최근 핵심인 1단 발사체를 세 번째 사용하며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기업가치가 이미 300억달러를 넘은 것도 재사용 횟수를 계속 늘리겠다는 머스크의 계획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괴짜’ 기업가인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갤럭틱도 내년부터 민간 준궤도 우주여행에 나선다. 이 회사는 최근 ‘스페이스십2’에 비행사 2명을 태우고 우주 경계인 상공 80㎞까지 시범비행한 데 이어 조만간 100㎞ 고도까지 보내는 시험을 벌일 방침이다. 여행비용은 1인당 25만달러선으로 5분간 무중력을 경험하고 우주 암흑 상태에서 지구의 빛나는 모습을 감상하게 된다.
블루오리진도 조금 더 높은 지구 궤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우주비행을 계획하고 있다. 베이조스는 “조만간 공해를 유발하는 제품은 대부분 지구 궤도에서 생산될 것”이라며 우주공장에 대한 꿈도 펴고 있다.
우주 업체들은 지구 궤도에서 거대한 태양전지판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지구로 보내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김승조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위성을 위주로 한 세계 우주기술 관련 시장이 3,000억달러를 넘는데 우주공장, 우주호텔, 소행성에서 귀금속 캐기 등 우주 산업이 만개하면 수조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 산업이 3,500억달러 규모로 2040년 1조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봤고 골드만삭스는 20년 이내 수조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구와 화성 사이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스페이스X에 10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우주 광물을 채취하는 ‘플래니터리 리소시스’에도 투자했다. 이 회사는 미네랄과 물이 풍부한 소행성에 우주선을 보내 이동로봇 ‘로보’를 통해 희토류·백금 등 광물을 채취하도록 한 뒤 지구로 가져오려고 한다. 그 시기는 발사체와 우주선·로봇 등 획기적인 기술 진전이 뒷받침돼야 해 30~50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10월 ‘하야부사2’ 우주선을 4년 만에 소행성 ‘류구’에 착륙시킨 데 이어 암석 등을 채취해 2020년 말 지구로 귀환시킬 예정이다. ‘하야부사1’은 소행성 이토카와에서 시료를 채취해 2010년 돌아온 바 있다. 앞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96년 초 ‘니어슈메이커호’를 발사해 2001년 2월 처음으로 소행성(에로스)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6,500만~6,600만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지며 공룡 멸망의 단초가 됐던 소행성 충돌 대책도 모색하고 45억~46억년 지구 역사의 비밀도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혁신적인 10주 과정의 싱귤래리티대를 운영하는 피터 디어맨디스는 “백만장자·억만장자는 이미 많다. 조만장자가 우주 산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