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기계에 익숙한 '미래인의 초상'

가나아트센터 '윤영석 개인전'

스마트폰에 빠진 현대인들 표현

자신 괴롭힌 耳鳴, 작품에 투영도

윤영석 ‘아히오(AHIO)’는 회로도 위에 놓인 문어같은 존재가 마치 인류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제공=가나아트윤영석 ‘아히오(AHIO)’는 회로도 위에 놓인 문어같은 존재가 마치 인류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제공=가나아트




윤영석 ‘아이보의 창’. 착시효과를 응용한 렌티큘러 작품으로 사람의 눈으로 직접 볼 때는 이미지가 움직이지만 이를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다. /사진제공=가나아트윤영석 ‘아이보의 창’. 착시효과를 응용한 렌티큘러 작품으로 사람의 눈으로 직접 볼 때는 이미지가 움직이지만 이를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다. /사진제공=가나아트


작가 윤영석이 이명(耳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설치작품 ‘명침(鳴針)’. /사진제공=가나아트작가 윤영석이 이명(耳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설치작품 ‘명침(鳴針)’. /사진제공=가나아트


미디어에 일찍 노출된 요즘 아이들은 감각과 지각을 스마트폰과 영상매체로 배우는 데 익숙하다. 더 영리하고 영악한 아이일수록 손발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리로, 기계로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의 삶이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경우 미래의 인류는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들어서면 바로 그 ‘미래인의 초상화’와 맞닥뜨린다. 7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 작가 윤영석(60)의 신작 ‘아이오(AHIO)’이다.

머리는 커다랗고 매끈하게 둥근 모양인데 팔다리는 가느다란 것이 꼭 문어 같다. 이들이 놓인 바닥은 거대한 회로도. 왜소한 다리가 바닥과 최소한의 면적으로 닿아 있다. 검은 원형의 발에 관객이 다가서면 센서가 감지해 작품이 움직이고 기계적인 소리를 낸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음’을 알리는 탐사경인 셈이다. 스마트폰에 빠져 화면만 들여다보느라 정작 앞을 보지 못하는, 경험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됐지만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 현대인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세상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온 윤영석 작가가 신작 설명에 앞서 독일 유학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1991년에 독일 친구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갔습니다. 그날 밤, 달은 산에서 뜬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지평선에서 마치 해처럼 떠오르는 달을 처음 보고 문명의 근원적 차이가 생기는 까닭을 체험했습니다. 염분 많은 사해(死海)가 절대 썩지 않는 대신 어떤 생명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슈투트가르트에서 베를린을 오가는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점처럼 멀리 있던 (뒷차의) 불빛이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와 비키라고 깜빡이는 것을 수차례 경험하고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그 경고 문구가 잊히질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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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표피적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과 경험과 지식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지를 깨달은 계기였다. 그때부터 인류애에 기반 한 의심이 시작됐다. 지난 2007년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개인전에서부터 선보인 렌티큘러 작업이 대표적이다. 사람의 양 눈이 이루는 각도 차이(양안시차) 때문에, 사람만이 경험하는 일종의 착시를 작품에 반영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깨닫고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아이 시(I See)’를 쓰지만 인간의 눈은 지극히 불안정합니다. 1㎜ 필름과 3㎜ 렌즈가 교접된 상황에서 착시를 느끼고 깊이감을 경험할 정도로요.”

‘네온 G O D’는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가상의 전쟁상황을 배경으로 한 평면작품인데도 그 앞에 서면 벽 너머로 수십m가 뚫린 듯 느껴진다. 카메라에는 찍히지 않는 현상이요,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허상이다.

한편 작가는 지난 30여년간 자신을 괴롭힌 이명(耳鳴)을 작품에 투영했다. 설치작품 ‘이·내·경(耳內景)’은 소리로 먼저 감지된다. 이명치료용 초음파 사운드와 현대음악으로 이뤄진, 그야말로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이다. 유리관에 든 거대한 봉침 양 끝에 핑크색 부푼 풍선이 매달린 조각은 날카로운 침과 팽팽한 풍선이 마주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날 선 긴장감 속에 ‘눈으로 이명을 경험’하게 한다. 일반적인 고무풍선과 달리 완전한 구형의 풍선은 구조용임을 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이 과연 얼마나 진실일까요. 인증샷을 보여준다고 해서 다 믿어야 할까요? 우리는 인지하고 싶은 것만 인지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이제 뭐가 보이고, 뭐가 들리십니까?” 작가가 묻는다. 30일까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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