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한반도24시] 한일갈등의 끝은?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징용공 문제, 국제재판 제소 땐

해결은커녕 진흙탕싸움 가능성

실리 따져 타협점 찾아 나서야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으로 한일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대립은 점차 극한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최근 징용공 변호인들은 일본 기업이 교섭에 임하지 않으면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압류를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한국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할 경우 경제조치를 포함한 강경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제 한일대립은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에서야 지난 10월30일 첫 징용공 배상 판결 이후 한일 양국 국장급 협의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또 이낙연 총리 주재로 징용공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대법원 판결에서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터라 한국 정부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여론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일본 내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징용공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하며 일본 기업이 조금이라도 돈을 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라 해결을 어렵게 한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때 모든 문제가 끝났고 일본정부가 한국 정부에 모든 배상을 했다는 아베 신조 정부의 주장이 먹혀들어갈수록 한일화해의 길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본 학계와 조야에서도 징용공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어 타협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점은 우파의 반한 주장이 일본 여론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이 국제법을 모르고 국제법을 무시하는 국가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현재의 국제법 동향이 인권을 중시해 점차 변화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마이동풍이다. 그리고 한국 사법부는 식민지 시대가 불법이라는 데 방점을 뒀으며 일본 정부조차 개인청구권은 인정한다고 하면 이는 한국 내에서 해결돼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번 징용공 문제에서 일본의 입장이 정당하기 때문에 한국의 기를 꺾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보는 경향마저 있다. 특히 대항조치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면 한국은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징용공 문제에서는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100% 승소할 것이라는 확신이 퍼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국제재판에서 질 수도 있다고 흘리지만 현재 일본 여론은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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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판을 치는 가운데 정작 한국은 한일관계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않는 것도 우려할 사항이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비겁자 게임을 하듯이 누가 먼저 양보할지를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질주하는 기관차 같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이런 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남북관계가 잘되면 한일관계도 해결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도 있지만 이보다는 한일관계가 잘못되더라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경제적인 손실을 보더라도 이참에 한일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징용공 문제에서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더라도 관할권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또 한국은 일본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앞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아무리 떠들어도 일본을 어렵게 할 뿐이라는 생각도 한편에 있다. 일본이 지나치게 한일갈등을 부추기면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태도도 문제지만 한일관계의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관심 또한 우려할 만하다.

징용공 문제 해결은 한일 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은 채 국제사법에 맡기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데 한국이 동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가더라도 한일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다. 결국 감정 다툼으로 한일 간의 진흙탕 싸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한일 양국은 서로 피해를 받는 것은 물론이며 그 결과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이라도 한일 양국이 냉정하게 실리를 따져 타협할 수 있는 지혜를 내놓아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수 있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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