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은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하고 담백한 소도시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군산은 호남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기지 역할을 했는데 당시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근대문화 역사 거리에는 여러 명소가 밀집해 있어 ‘당일치기’로 여행 코스를 짜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먼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절인 ‘동국사’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식 사찰답게 한국에서 흔히 보는 절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 양식을 본뜬 대웅전 지붕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처마에는 별도의 장식이 없다. 절이 넓지는 않지만 힘찬 기상이 돋보이는 건물과 일본식 조경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대나무 숲도 멋스러운 풍광을 자랑한다. 절 앞마당으로 가면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는 단체들이 건립한 ‘평화의 소녀상’도 보인다. 결연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소녀상 뒤로는 일본 불교의 최대 종파 중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이 세운 참사비가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권력에 편승해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문구가 적힌 참사비는 지금껏 진심 어린 뉘우침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본 정부를 대신해 잘못을 빌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포목상이었던 히로쓰 게이사부로가 지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옛 히로쓰 가옥)’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다. 이 목조가옥이 위치한 일대는 당시 군산 시내의 유지들이 대거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한다. 일본식 정원과 전통 가옥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이곳은 영화 ‘타짜’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등 많은 작품의 촬영지로 쓰였으며 지난 2005년 등록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밖에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인 ‘해망굴’, 쌀 반출을 위해 일제가 만든 ‘뜬 다리 부두’ 등도 둘러보면 좋을 명소들이다. /글·사진(군산)=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