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모녀판 '사랑과 전쟁'

고광본 바이오IT부 선임기자

학부모 간섭 불가피한 大入전쟁

학생들도 지치고 자존감 떨어져

교육 혁신은 경제·미래와 직결

사회 全분야 종합 접근 나서야




우리 집은 연일 전쟁이다. 고교 2학년 딸의 대학 입학 전쟁이다. 여기에 엄마가 지휘관으로 참여한다. 아빠는 훈수꾼에 불과하다.

문제는 절대 학생 혼자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딸의 성취도와 엄마의 기대치도 차이가 난다. 과학중점반에 다니는 딸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아내는 “엄마들이 대입 전략, 학원 물색, 생활기록부 관리 등 안테나를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자연스레 딸의 생활태도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훈계가 많다.


딸도 고역이다. 대입 정원의 70%가량인 수시전형을 위해서는 내신성적과 학생부 종합전형이 중요한데 신경 쓸 게 보통 많은 게 아니다. 내신 1등급은 단 4%에 불과한데 주입식·외우기식 오지선다형이라 조금만 실수해도 낭떠러지로 미끄러진다. 정시는 재수생의 독무대라 재학생은 명함을 내밀기 쉽지 않다. 딸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엄마에게 고맙지만 간섭이 심해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항변한다.

이렇게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통에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가 사라진 지도 벌써 몇 년째 됐다. 부모와 자식 간 ‘사랑과 전쟁’도 반복된다. 우리나라 고교생이 있는 가족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실제 딸의 일상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수학이나 과학 공부하는 것을 보면 부모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내신 문제를 봐도 기가 막힐 때가 있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마치 아이들을 빅데이터를 품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여기는 듯하다. 수능 영어나 수학 문제도 너무 비비 꼬아 불수능이라는 말이 나온다. 오죽했으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이나 외국 교사한테 풀라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까.


딸은 학교와 학원·독서실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며 공부에 매달린다. 주말도 방학도 없다. 먼 지역의 학원까지 다니느라 저녁을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울 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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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모아 화학·물리를 탐구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주도하고 학교 화학동아리에도 참여한다. 교내 과학이나 영어, 독서 등 각종 경시대회에도 꼬박꼬박 도전한다. 대학 연구실을 탐방하기도 한다. 지역 학습봉사 동아리에 참여해 매월 소외이웃이나 다문화가정의 초중학생에게 수학·과학도 가르친다. 월드비전 학급 관리자로서 후원을 진행하며 내역을 급우들과 공유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만능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제대로 대학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람부터 무덤까지 인생 자체가 경쟁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이런 와중에 숙명여고판 성적비리도 터졌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도 적지 않게 매스컴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교권이 무너졌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짐짓 뒷짐을 지는 교사도 적지 않다.

대학에 간다고 해도 학점과 스펙 쌓기에 올인해야 한다. 수업시간에는 질문도 거의 없다. 일류대조차 예외가 아니다. 교수도 대부분 면피 차원에서 시험에도 주관식 문제를 꺼린다. 여전히 고교의 연장인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 정부나 대학이나 미래형 인재를 키운다는 게 왠지 말의 성찬으로 들릴 뿐이다.

언제까지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하고 교육혁신에 변죽만 울릴 것인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한 것은 없다.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학생과 가정·교사의 행복은 물론이고 미래 인재양성과 경제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부동산과도 관련이 있고 과도한 사교육비는 소비위축을 불러온다. 학력지상주의는 고용구조의 왜곡을 낳는다. 그만큼 교육은 사회 각 분야에 미치는 고차방정식이라 치밀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각 시도교육감, 청와대의 김수현 정책실장과 이광호 교육비서관,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등 교육위원들의 응답을 기대한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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