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이 또다시 혼란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모습은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확대시킨다. 국민연금에는 세 가지 부정적 인식이 있다. 불만·불신·불안이다. 불만은 열심히 보험료를 납부해도 연금액이 너무 낮다는 불만족이고, 불신은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정부 개입으로 독립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불안은 국민연금의 재정적자와 기금고갈로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를 해결하려는 것이 국민연금 개혁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제4차 국민연금 종합계획운영안은 재정안정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책임만 국회에 미루는 모습으로 비친다. 물론 개혁은 힘들고 비판은 거세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무부처로서의 확고한 의지나 철학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대통령이 주문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면 재검토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제시한 네 가지 방안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을 그대로 유지하는 안(1안)과 그대로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크게 올리는 안(2안)이 있다. 3안과 4안은 보험료와 연금액을 올리는 방안이다. 보험료율을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려 12%까지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올리는 안(3안),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고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안(4안)이다.
먼저 1안과 2안은 현재 제도를 그대로 두고 나중에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안과 4안은 보험료율과 연금수준을 동시에 올리는 방안이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해소하려면 연금액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보다 보험료 부담을 훨씬 더 높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오히려 재정적자를 악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런 정부 개혁안은 무엇보다 국회의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을 유지하려는 1안과 2안은 개혁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3안과 4안의 보험료 인상은 선거 눈치를 보는 국회에 회피 대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 논의가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국민연금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국민연금 개혁이 다층보장 체제를 너무 간과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층보장 체제는 국민연금을 기본보장에 충실하게 하면서 퇴직연금과 연계해 노후보장의 종합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늘리는 것보다 보험료의 불공평을 없애야 한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모든 가입자에게 보험료율을 동일하게 9%로 부담하게 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는 건강보험과 달리 486만원까지만 보험료를 부담하게 돼 있다. 그래서 고소득 계층은 실제 9%보다 훨씬 낮은 보험료율이 부과된다. 예를 들어 486만원의 두 배(972만원)를 받는 소득자의 보험료율은 9%의 절반인 4.5%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하게 9%로 적용할 경우 현재 보험료율을 3~4% 인상하는 효과가 있다. 또 국민연금 연금액은 기본보장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연금액 상한선을 마련해 재정안정에 결정적인 안정 효과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제시된 개혁안처럼 단순히 보험료율을 올리면 중간 및 저소득층의 부담이 늘어나고 동일한 보험료율을 부담하는 정률제를 하면 고소득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현 정권이 정당성을 찾고 공적연금 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률제로 정책 방향을 잡고 기득권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사명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기본보장 체제를 구축해야 가능해진다.
모든 국민이 평등한 기본보장을 국민연금에서 보장받고 소득비례 성격의 퇴직연금을 추가하는 다층보장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노후보장의 기본이 되는 체제다. 모든 국민의 노후를 위한 기본보장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는 개선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