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Science&Market] 과학기술 미래는 '뿌리 많은 나무'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장

융합·초연결의 4차산업혁명시대

지엽적 전문성 의존한 연구보다

다학제적 집단지성 끌어모을 때




용비어천가 2장에는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와는 달리 자연은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박혀 있지 않아도 많은 뿌리를 내리고 서로 얽히게 해 나무의 생존을 안전하게 유지하기도 한다. 즉 ‘뿌리가 많은 나무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도 많이 피우고 열매도 많이 맺을 수 있다.’

20세기까지의 과학기술 분야는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지엽적이고 깊은 전문성에 의존해 성장하며 학제 간의 구분과 경계가 뚜렷하고 벽이 높았다. 반면에 21세기 이후 초연결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은 오히려 많은 뿌리가 서로 얽혀 큰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제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다학제적이고 총체적 지식이 요구되고 있어 좁고 깊은 지식의 체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뿌리와 같은 관계망을 통해 과학기술이 안정적으로 지탱되고 발전되게 만들고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성과를 내게 한다.


특히 핵융합과 같은 거대과학 분야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지기 위해 오프라인 관계망이건 온라인 관계망이건 다학제적 융합 및 협업이 가능한 관계망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한 예로 미래 에너지원의 대안으로서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해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7개국이 공동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인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search)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지역에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이 장치를 건설하기 위해 세계 학계·연구계·산업계는 물론 참여국 정부들이 긴밀한 융합 및 협업 관계망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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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은 핵융합 장치 건설의 공학적 노하우와 핵융합 연소 현상의 실험적 검증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어 실제 핵융합에 의한 전기 생산과 경제성 실증을 위해서는 또 다른 실증용 핵융합 시설이 건설돼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연구개발 기간과 연구비를 필요로 해 사전에 충분한 설계 검증이 필요하다. 이는 지금까지의 좁고 깊은 연구개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다양한 관계망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묶어야 가능하다. 즉, 실제 장치를 건설하기 전에 가상 핵융합 장치를 사이버 공간에 건설해 최적화된 설계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 가상 장치는 무수히 많은 뿌리를 두고 있는 나무처럼 다양한 관계망에 의해 발전되고 유지된다. 이를 위한 기술들은 이미 4차 산업혁명 진행 중에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개발돼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은 글로벌 관계망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전문가들이 쉽게 연결될 수 있으므로 시간과 공간의 구애 없이 다학제적 집단지성을 끌어모을 수 있다.

가상 핵융합 장치 건설을 위해서는 핵융합 데이터 생산 장치와 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관계망 인프라가 필요하고 이를 가상화할 수 있는 고성능의 슈퍼컴퓨팅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융합 데이터 생산 장치로는 현재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과 2025년에 완공될 ITER을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1월 KISTI와 미국의 페르미국립연구소의 협력으로 대용량의 KSTAR 실험 데이터를 대륙 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내년에는 국가핵융합연구소에 1페타플롭스(FLOPS)급 슈퍼컴퓨팅 능력을 갖는 핵융합연구용 슈퍼 클러스터 시스템을 설치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많은 뿌리가 얽혀 있는 것과 같은 초연결성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의 핵융합 장치를 건설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됐다. 이제는 뿌리 많은 나무 위에 핵융합에너지의 실현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는 날이 현실적으로 가까이 올 것이라 기대해 봄 직하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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