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창조적 파괴'의 明과 暗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동아대 석좌교수

4차혁명發 일자리 구조조정 눈앞

기업엔 고용·해고 쉽게 해주면서

근로자엔 확실한 사회안전망 병행

노사정 대화·합의 관행 정착시켜

'유연안정성' 정책으로 미래 대응을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슘페터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혁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경제구조를 내부에서부터 끊임없이 혁명적으로 뒤바꾸려는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서 혁신적인 변화의 주체로 기업가를 꼽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의 속도가 더욱 가속되면서 기업의 부침이 빨라지고 있고 이에 따른 노동시장에서의 갈등 역시 고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직격탄은 1차적으로 로봇이나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자리에 떨어졌으나 숙련 일자리도 타격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카카오 카풀 서비스와 택시 업계 간 갈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카풀 서비스는 기존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택시기사와 택시 업계의 반발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카풀 서비스에 더해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운전기사 대다수가 실직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PwC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 일자리의 38%, 독일 일자리의 35%, 영국 일자리의 30%, 그리고 일본 일자리의 21%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창조적 파괴’ 현상에 의한 사회적 갈등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센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시대적 난제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파괴함과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보다 많을지 적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지난 200여년간 진행된 산업혁명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새로운 일자리가 충분히 생겨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이른바 ‘제4의 실업’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자리와 관련된 구조조정의 속도와 폭이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함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이러한 개인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정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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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시행해 지금은 세계 각국 노동정책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은 기업에는 해고와 고용을 한층 쉽게 하도록 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실히 제공함으로써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사민당 출신 총리인 라스무센이 추진한 ‘유연안정성’ 정책에 힘입어 덴마크는 경제성장과 소득 분배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최저임금도 정부가 일률적으로 책정하지 않고 노사 협의에 의해 산업별·지역별로 각각 다르게 정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유연안정성 정책이 성공하려면 노사정 간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관행이 하루속히 정착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난(國難)을 맞아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정리해고 제도를 법제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다. 동시에 고용보험제도를 개선해 실업수당의 대상과 수준을 확대하고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동시에 제고함으로써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오랜 산고(産苦) 끝에 최근 발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등 현안 해결은 물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여가는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이와 동시에 근로자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고용보험과 사회보장 부문에서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이를 정부의 ‘2040계획’에 포함함으로써 ‘한국형 유연안정성 정책’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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