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에서 비롯된 중국의 경기둔화 여파가 미국의 대표 기업인 애플을 필두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을 전방위로 강타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새해 벽두부터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애플이 중국 내 판매 부진 등으로 실적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그동안 무역전쟁의 피해가 크지 않다고 호언장담해온 미 백악관에서도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차이나 리스크’ 현실화 우려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애플이 중국 시장 부진을 이유로 실적을 대폭 하향 조정하며 시장에 충격을 준 데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 비슷한 역풍을 맞을 미국 기업이 더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실적 우려가 예상되는 기업은) 애플만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가 중국과 (무역) 합의에 이를 때까지 내년 실적 하향 조정을 겪을 미국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중국 경제가 급속히 둔화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있다”며 “중국에서 이익을 내는 다국적기업들은 최소한 수지가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이날 미국 2위 항공사인 델타가 지난해 4·4분기 단위매출(좌석당 1마일 비행으로 발생하는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당초 전년 동기 대비 3.5%에서 3.0%로 낮춰 잡았으며 거대 곡물업체인 카길도 무역전쟁의 여파로 지난해 9~11월 분기 순이익이 2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미국 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금까지 중국 경제의 탄탄한 견인차 역할을 해온 중국 소비자들이 경기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사치품부터 전자기기 제조 업계, 여행업 등 세계 경제의 각 분야를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와 민간 매체가 잇따라 발표한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경기위축의 기준선인 50을 밑돈 것으로 나타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수출 부진이 내수경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진단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날 미 CNBC는 중국 자동차 산업 컨설팅 업체인 조조고(ZoZoGo)를 인용해 대표적 실물경제지표인 중국 내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전년 대비 3% 줄어든 약 2,800만대를 기록했다며 중국에서 자동차 판매가 감소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조조고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무역 악화와 중국 소비심리 위축 여파로 올해는 자동차 판매가 5%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90일간의 시한부 미중 무역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중국 소비자들의 미국 자동차 구매 분위기가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파장이 현실화하면서 중국 산업계도 올 한해 길고 긴 엄동설한을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중국 최대의 검색 엔진 바이두의 리옌훙 회장은 새해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혹한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인공지능(AI) 등 신경제 영역에서 분투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리 회장은 “최근의 경제구조 변화 압력은 모든 기업들에 혹한과 같은 냉정한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2018년은 우리의 추억이 됐고 2019년 얼음과 불의 노래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 제목을 인용해 언제 다가올지 모를 위험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본격적인 경기둔화와 맞물려 지금까지 채용을 늘려왔던 중국 기업들이 감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9월 중국의 구인 사이트 ‘즈롄자오핀’을 이용한 구인 정보는 27% 감소했다며 인터넷과 부동산 분야의 업황이 악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구인 사이트 ‘써우핀’이 지난해 4·4분기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채용을 줄이겠다는 기업의 응답이 21.3%로 전년 동기 대비 5.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