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文대통령이 방문한 '메이커 스페이스', 단순 '창업지원시설' 아닌 이유

창의력 통해 스스로 물건 만드는

'메이커운동' 활성화 공간으로 통해

창업가 외에 일반인도 활용 가능해

전문가 "산업 관점으로만 보는 대신

제조로 문제 푸는 문화로서 접근해야"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N15에서 류선종(왼쪽 첫번째부터) N15 공동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3D 모델링 출력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N15에서 류선종(왼쪽 첫번째부터) N15 공동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3D 모델링 출력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첫 경제행보로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N15’를 방문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3D 모델링, 외형제작, 전자부품 제작 및 계측, 조립, 테스트에 이르는 시제품 제작 과정을 체험했습니다.

보통 대통령의 새해 첫 경제행보에는 눈길이 쏠리곤 합니다. 올해 정부에서 어떤 부문에 강점을 둘지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창업 실패가 두렵지 않은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국가’를 만들겠다”며 “정책금융기관의 연대보증 전면 폐지, 창업기업 부담 완화, 혁신 모험펀드 조성, 메이커스페이스 전국 확대 등을 통해 혁신창업 활성화 노력을 더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N15 방문이 ‘혁신형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란 풀이가 나왔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N15에서 혁신 창업 활성화를 거론했다고 해서, 메이커 스페이스를 단순히 ‘창업 인프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창업 플랫폼은 물론이고, ‘일반인’까지 마음대로 시제품을 제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조 문화’를 뒷받침하는 종합공간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3D프린터 등 고가의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설계·제조·생산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설계도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소규모 디지털 장비로 어떤 물건이든 만들 수 있는 장소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 팹랩서울을 기점으로 메이커 스페이스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죠. 지난해 1월 기준 국내엔 총 204곳의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정부는 2017년 11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 확산방안’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일반형 메이커 스페이스 350곳, 전문형 메이커 스페이스 17곳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반형 공간은 인근 지역 일반인에게 제조 교육과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전문형 공간은 전문 제조업자나 초기 창업자의 시제품 제작을 돕게 됩니다. 핵심은 ‘민간 메이커 스페이스’ 육성입니다. 민간 메이커 스페이스 확대를 위해 시설구입비·장비구입비·인건비 등을 국비로 지원해주는 게 골자입니다. 이 맥락에서 정부는 지난해 전문형 공간 5곳, 일반형 공간 60곳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올해에도 60여 곳을 추가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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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부가 메이커 스페이스 육성정책에 나선 건 해외에서도 ‘메이커 운동’이 다양한 창업·사업화를 이끌 수 있는 길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메이커 운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제품을 만드는(DIY·Do It Yourself) 활동을 뜻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도 “오늘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라고 말했고, 리커창 중국 총리도 같은 해 “메이커는 사람들 속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그러한 창의성이 중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엔진”이라고 거론한 바 있습니다. 메이커 스페이스 지원사업은 창업 활성화를 꾸준히 강조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 통합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메이커 스페이스 확대 정책이 성공하려면 ‘산업정책’ 프레임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메이커 운동의 본질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문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창업 활성화’가 메이커 스페이스 지원의 ‘결과’가 될 순 있을지언정, 핵심이 될 순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에 메이커 스페이스 정책을 자문한 한 관계자는 “다행히도 주관부서인 중기부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문화’로 보고 있다”면서도 “걱정스러운 건 타 부처·기관이 메이커 스페이스를 ‘창업과 취업의 도구’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민간 메이커 스페이스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DIY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현재는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메이커 스페이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자체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수익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최대 민간 메이커 스페이스인 테크숍(Techshop)도 멤버십 형태로 운영하다 2017년 부도를 맞았죠. 허제 N15 대표는 “일반인이 고객이 돼야 한다”며 “주변 지역의 니즈를 잘 파악해 일반인이 메이커 스페이스에 오는 고유한 ‘목적’을 창출해내는 게 관건”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원용관 전남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메이커 스페이스는 직접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화의 장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우선 메이커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재능을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그로 인한 파급효과로 자연스럽게 창업이 촉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메이커 스페이스 정책의 목표 자체를 창업에 둬선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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