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은 지난 2017년 점포 통폐합에 나섰다가 최고경영자(CEO)가 국회에 불려가고 호된 질책을 받는 등 수모를 겪었다. 그렇지만 당초 목표보다는 적지만 90개 지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외국계여서 가능했지 국내 은행은 언감생심이다.
점포 통폐합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씨티은행은 자산관리(WM) 부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위주로 체질을 완전히 개선해 국내 고액자산가들을 빨아들이며 WM의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돈이 되는 고액자산가들을 외국계인 씨티은행에 고스란히 빼앗기고 있지만 국내 은행은 여전히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비효율적인 점포운영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점포 통폐합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지금과 같은 점포 비효율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박진회 행장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박 행장은 당시 “고객의 80~90%가 모바일로 몰리는 상황인데 인력을 점포창구에 50%나 배치하고 있다”며 “이들을 WM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지만 박 행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거세게 반발했다. 금융노조 출신인 이용득 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점포폐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수차례 열었다. 국회의 반발에 부딪히자 한국씨티은행은 당초 통폐합 목표치인 101개보다 적은 90개 지점을 줄이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씨티은행의 총 점포 수는 2017년 6월 134개에서 같은 해 9월 44개로 감소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우려와 달리 한국씨티은행은 점포 근무 직원을 재배치함으로써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총 임직원 수는 3,512명으로 2017년 초에 비해 37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지점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대부분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로 자리를 옮겼으며 WM 등 전문성이 높은 부서로 발탁된 인원도 100명이 넘는다.
소형 지점이 사라진 오프라인 영업망은 대형화된 WM센터가 대체했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은 경기도 분당, 서울, 대구, 부산 등 7곳에 WM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서울 신문로 서울센터와 강남구 도곡센터는 프라이빗뱅커(PB) 50명 이상이 상주하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다른 시중은행의 경우 PB가 10명 넘게 근무하는 WM센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씨티은행은 WM 사업을 강화해 오는 2020년까지 국내에서 관리하는 투자 자산을 6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이 같은 체질개선 덕에 한국씨티은행의 영업력 지표인 충전이익(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이 지난해 3·4분기 누적으로 전년동기(3,414억원) 대비 9.4% 늘어난 3,736억원을 기록하는 등 국내 시중은행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서울 압구정동에 KB금융지주의 여러 계열사가 함께 들어서는 복합점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고객에게 자산관리부터 부동산 정보 등 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문화 및 휴식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점포를 다양화하며 점포전략을 수정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점포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실험적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