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채연석 "신기전이 로켓 원조...우주개발, 도전적 목표 잡고 민간 이양을"

<신기전과 거북선 연구 권위자 채연석 前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달 탐사·착륙선 발사 등 구체적 날짜 못박고 어려워도 과감하게 추진

발사체 제작·발사 확대...민간 참여 위한 기술이전·인프라 활용책 시급

정권따라 춤추는 '우주정책' 안돼...안정적 예산 확보·우주청 검토해야

대담=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신기전은 설계도가 가장 오래된 로켓의 원조이죠. 조상들이 놀라운 과학기술을 보여줬는데 우리도 발사체와 위성 등 우주개발에서 도전적인 목표를 내놓고 과감히 추진해야 합니다.”


신기전과 거북선 연구 전문가인 채연석(68·사진)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최근 서울 율곡로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갖고 “세종대왕 때 개발한 신기전이 로켓의 원조인 만큼 우주개발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002년 11월 추력 13톤급 액체추진제 과학로켓(KSR-Ⅲ)을 개발, 발사했고 항우연 원장 시절인 2003년에는 대형 액체엔진 개발의 핵심부품인 터보펌프 연구개발팀을 만들어 30톤급 액체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KSR-Ⅲ는 3,000여개의 부품이 들어갔는데 100% 국산화했다”며 “원장을 할 때인 2003년 100㎏급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리는 나로호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나로우주센터 건설도 추진했다”고 술회했다. 나로호는 1단 추진체는 러시아제, 2단 추진체는 국산을 사용해 2013년 1월 세 번째 만에 성공했다. 앞서 그는 1990년 초 북한이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하자 액체추진제 로켓 연구에 들어가 1996년 추력 180㎏급 액체엔진을 개발했다.

이런 과정이 지난해 11월28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발사체(누리호) 엔진 시험발사체(75톤 추력)를 쏘아 올린 토대가 됐다.

그는 신기전에 관해 “고려 말 최무선 장군 때부터 발달한 화약기술을 바탕으로 조선 세종 때 화살에 화약통을 달고 날아가 터지는 형태로 개발해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 등에서 활용됐다”고 소개했다. 당시 중국은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은 있었으나 대신기전은 없었고 서양은 로켓을 이용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설계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08년 국조오례의에 담긴 신기전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험을 통해 대신기전을 400~500m 날려 폭발시키고 2013년에는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인 산화신기전의 분리 비행에 성공한 바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61년 취임 후 ‘1960년대에 달에 사람을 보냈다가 돌아오게 하겠다. 어려운 일이라 하려고 한다’고 했다”며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도전적이어야 한다. 과학자에게 쉽게 도달하지 못할 어려운 목표를 주고 뛰게 해야 첨단기술이 발전한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이 로켓 직경이 10m(1단), 길이 110m, 무게 2,000톤의 새턴5 발사체를 완성해 1968년 말 달 궤도를 돌고 1969년에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도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정부가 ‘2030년까지 달에 착륙선을 보내겠다’고 하지만 로켓이 개발되면 달에 보내겠다는 조건이 전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산 발사체로 오는 2025~2026년 달 궤도에 탐사선을 보내고 2029년까지 달에 착륙시킨다는 식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도전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2월 2021년까지 한국형발사체(1단은 추력 75톤 엔진 4기 묶음, 2단 추력 75톤 엔진 1기, 3단 추력 7톤 엔진 1기)를 개발한 뒤 2030년까지 달에 착륙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좀 더 과감히 나서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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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단 로켓을 7톤보다 작은 고체연료로 만들면 한국형발사체로도 300~400㎏짜리 소형 달 궤도 탐사선을 보낼 수 있다”며 “우주개발용 고체로켓 개발이 수십 년째 미국에 묶여 있는데 이것을 풀어야 지금보다 더 큰 로켓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4단 로켓으로 한국형발사체를 개량하면 5~6년 내 우리 발사체로도 달에 궤도선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내년에 미국 스페이스X 발사체를 이용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550㎏짜리 달 궤도 탐사선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2021년 한국형발사체를 개발한 뒤 세 차례 시험발사를 거쳐 2023년에 1.5톤 위성을 600㎞ 궤도에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며 “시험발사를 5~6회로 늘리면 발사체 관련 기업에 물량이 늘어나고 위성 발사 성공률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례로 일본도 대형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H-2로켓을 1994년 개발한 뒤 발사물량을 늘려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발사체 총괄제작을 맡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형발사체를 개발한 뒤 발사횟수가 적으면 어느 업체에서 총괄제작과 발사를 맡으려고 할지 미지수”라며 “발사체 제작과 위성 발사를 대폭 늘려야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 국제 경쟁력을 빨리 확보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한국형발사체 개발에 10년간 총 2조원이 투입되지만 200여 발사체 관련 기업이 고급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인책은 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형발사체가 완성되면 현재 나로우주기지의 발사대 옆 신규 발사대를 이용하게 된다”며 “기존 발사대에도 수천억원이 들어갔는데 민간이 소형위성을 발사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활용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2031년부터 외국 소형위성을 지구 저궤도(200~2,000㎞)에 올리는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에 맞춰 민간에 기술이전과 인프라 활용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개발 역사에서 과거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던 점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우주개발 예산이 축소됐다”며 “장기 투자가 필요한 우주개발에서 중도에 예산이 줄어들면 목표 달성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산업체도 큰 타격을 입는다”고 우려했다. 실제 달 탐사 역사를 보면 정권따라 부침이 심했다. 노무현 정부는 달 착륙선 발사를 2025년으로 잡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다지 우주개발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대선공약으로 달 궤도선과 착륙선 발사를 2018년과 2020년으로 앞당겼다. 이는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문재인 정부는 내년에 미국 발사체로 달 궤도선을 보내고 2030년까지 우리 발사체로 착륙선을 보내는 것으로 늦췄다.

그는 “안정적으로 우주예산을 확보하고 범부처 우주개발의 특성을 감안해 ‘우주청’을 설립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지난해 말 유럽 발사체로 발사한 천리안 2A위성은 개발은 과기정통부(항우연)가 했지만 기상청이 사용하고, 연내 발사할 천리안 2B위성도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서 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담당 부처(과기정통부)의 우주 관련 공무원이 1~2년 단위로 바뀌는 애로도 있다.

한편 그는 “나로우주센터의 액체엔진 국산 시험시설을 봤는데 우주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며 “지난해 말 한국형발사체 엔진 시험발사체도 국산화에 성공하고 3.5톤짜리 천리안 2A위성도 부품을 많이 수입하기는 하지만 우리 기술로 설계와 시험을 해 띄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정리=고광본 선임기자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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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충주 △1975·1977년 경희대 물리학사·기계공학 석사 △1984·1987년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항공우주공학 석사·박사 △1987년 NASA 루이스연구센터 방문교수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1997~2001년 항우연 액체 과학로켓(KSR-3) 개발사업단장 △2002~2005년 항우연 원장 △2005~2012년 항우연 연구위원 △2013~2018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초빙교원, 전문교수 △2017년~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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