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수입가구 폭리 천태만상] 160만원 독일 소파, 한국선 1,200만원...특가라며 790만원에 팔아

■ 본지 14개 브랜드 심층 취재

1515A02 주요 수입가구 원산지 가격 비교 수정2



# 오는 3월 결혼을 앞두고 신혼살림 마련에 나선 최진혁(33·가명)씨는 지난주 말 예비신부와 함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가구거리의 수입가구 매장을 방문했다가 1,000만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씨가 고른 독일산 가구 S브랜드의 대표 소파 가격은 1,200만원. 백화점보다 로드숍이 훨씬 저렴하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찾은 매장이었기에 “할인 프로모션은 없느냐”고 문의했고 매장 직원은 선심 쓰듯 “이 물량 하나만 남았다. 다음날까지 구매를 결정하면 790만원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신혼살림이니 내 평생 이런 고급가구를 언제 살까 싶어 구매를 결정하기는 했지만 카드 값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는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최씨가 고른 소파와 동일 색상·모델의 경우 독일 현지에서는 1,299유로(약 166만원)로 7분의1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수입가구의 가격 거품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배송과 설치가 까다로운데다 수입창구가 다변화하지 않은 가구 업계 고유의 특성을 악용해 판매과정에서 최대 5배 이상 폭리를 취하는 일이 다반사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주간 수입가구를 판매하는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와 주요 백화점, 수도권의 백화점 계열 아웃렛을 심층 취재한 결과 조사 대상 14개 브랜드 가운데 유럽산(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을 표방하는 수입가구 브랜드 모두 현지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조사 대상의 제품 가격이 워낙 고가라 현지 소비자가격을 인터넷 등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4곳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현지 소비자가의 2배 이상을 받아야 한국에서 손해 보지 않고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로 수입가구의 가격 부풀리기는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판매수량 제한” “소장가치” 운운..최대 할인 받아도 현지보다 5배

◇“초고가 마케팅으로 소비자 꾀어”
=대표적으로 폭리를 취하는 브랜드로 꼽힌 S브랜드의 경우 독일 현지에서는 소파 전 라인이 통상 200만~300만원대 정찰제로 팔리고 여기에 시즌 할인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에 속하는 로드숍조차 매장에 진열했던 제품만 500만원대 후반일 뿐 신제품은 최대폭으로 할인을 받아도 700만~900만원대를 오갔다. 소비자가는 1,000만원 초반부터 형성돼 있다. 기자가 방문한 S브랜드의 판매직원은 “연초 프로모션이 진행돼 최대 35%의 할인율이 적용된다”며 “워낙 인기가 높은데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수량이 제한돼 있어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소장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다른 수입가구 브랜드도 상황은 유사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으로 이름난 수입가구 브랜드 M은 암체어 1개에 77만8,000원(온라인 기준)에 판매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조건으로 수입하는 일본에서는 13만2,000원 저렴한 6만2,640엔에 구입할 수 있었다.

지난 13일 광명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템퍼 매트리스 매장에 할인폭과 가격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이수민기자지난 13일 광명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템퍼 매트리스 매장에 할인폭과 가격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이수민기자


●템퍼, 他국가 가격 확인 원천봉쇄..백화점 제품, 로드숍에선 35% 할인

◇유통채널마다 가격 제멋대로=
프리미엄 매트리스로 인기가 높은 템퍼는 다른 국가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을 확인할 길을 막아놓았다. 소비자가 다른 언어로 검색해도 접속한 지역에 따라 한국 공식 홈페이지로 연결되도록 했다. 서울경제가 확인한 결과 일본에서 오리지널(30㎝) 매트리스는 사이즈에 따라 25만~39만엔(약 257만~402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동일한 제품이 370만~550만원(권장소비자가)이지만 현재 15%가량의 할인 프로모션이 진행돼 314만~46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단순계산으로도 한국이 50만원 가까이 비싸다.


구매대행이 매트리스보다 용이한 베개를 살펴봐도 국가별 가격 차이가 벌어진다. 같은 브랜드의 ‘소나타 베개’는 라지 사이즈의 경우 권장소비자가가 19만원. 현재는 할인 중이어서 16만1,5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만3,280엔으로 13만원대다. 그렇다면 유럽권에서는 어떨까. 스웨덴에서는 ‘오리지널 베개’ 가격이 760.75~981.75크로나(약 9만5,330~12만3,000원)다. 우리나라에서는 14만~16만원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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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판매채널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다. 백화점과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매트리스(오리지널 25㎝)가 최소 280만~470만원에 판매되지만 로드숍에서는 270만원부터 시작한다. 백화점 가격과 로드숍 가격이 왜 다르냐는 기자의 질문에 로드숍 판매 직원은 “커버만 다르고 동일한 제품이며 AS도 똑같다”면서 “오히려 백화점 매장에서 우리(로드숍) 가격에 대해 항의를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이 점원은 “성능은 전혀 다르지 않고, 커버를 다르게 씌운 것도 판매채널별로 구분 짓기 위해서일 뿐”이라며 “로드숍은 여기에다 35%나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백화점 매장에서는 “로드숍 제품과 백화점 판매 제품은 라인부터 아예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서 “정식 제품인 것은 맞지만 AS 기간도 짧고 제품의 질도 같을지 의문”이라고 항변했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제품도 아웃렛 매장으로 나가면 할인폭이 더 커진다. 이케아 매장과 바로 붙어 있어 가구 소비자의 발길이 잦은 광명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서는 ‘브랜드위크’를 내세우며 일부 제품에 최대 35%까지 적용하고 있다. 다음달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의 여러 템퍼 매장을 살펴보고 있다는 주부 김가영(38·가명)씨는 “같은 브랜드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매장 여러 곳을 돌면 돌수록 신뢰가 떨어져 어이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진 3~5배 붙인 뒤 후려치기 예사..수입원장 자체도 원산지 보장 못해

◇마진 뻥튀기·원산지도 깜깜이
=그렇다면 전 세계 가구가 대부분 생산되는 유럽이나 중국을 원산지로 가정할 경우 우리나라로 가구를 들여오는 업체가 얻는 마진은 어느 정도일까.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침대나 소파 등 무게가 100㎏ 전후로 무거운 제품이라고 가정할 때 관세는 유럽연합(EU)과 중국 모두 0%다. 매트리스는 종류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0%, 부가가치세 10%와 개별소비세만 별도로 붙는다. 개별소비세의 경우 시행령에 따르면 1조(세트) 800만원 이상 1개 500만원 이상 제품에만 부과되며 이는 과세기준의 20%다. 중저가 가구를 수입, 판매하는 이동훈(47·가명)씨는 “수입가구는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임대료나 직원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수입 원가의 2배 정도를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다”며 “하지만 유명 수입가구 브랜드들은 대부분 마진을 3~5배까지 붙여 정가를 책정하고 나중에 가격을 후려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입가구 판매채널에서 정찰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값비싼 가구를 확 깎아주는 업체로 마음이 기울기 때문에 오히려 10% 내외의 가격할인을 하는 정찰제 브랜드가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0여년 전부터 정찰제가 일부 브랜드에 시범적으로 도입됐지만 지금은 이곳들조차 정찰제 포기를 고려할 정도로 가격 부풀리기가 심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 브랜드 관계자는 “우리 매장에 찾아온 고개들은 ‘왜 다른 곳에서는 크게 깎아주는데 여기는 안 깎아주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며 “가격 자체를 크게 부풀려놓고 깎아주는 척하는 곳들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 이탈리아?” 원산지 확인도 쉽지 않아=가격을 신뢰할 수 없는 수입가구들의 문제점은 또 있다. 생산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가구 브랜드들은 인건비 등을 문제 삼아 이탈리아에서 중국으로 대거 생산기지를 옮겼다. 업계에서는 국내에 수입되는 가구 대부분을 중국산으로 보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수입가구 매장들은 공통적으로 “이탈리아산 혹은 프랑스·덴마크산”이라며 유럽에서 건너온 제품이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일부 매장에서는 경쟁사 제품을 “무늬만 유럽산이지 실제로는 중국산”이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브랜드를 믿는 방법 외에는 가구의 원산지는 확인할 수 방법이 없다. 수입원장을 공개하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이는 판매업자의 의무가 아니며 수입원장 자체도 물건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를 확인해줄 뿐 ‘메이드 인 이태리’를 보장하는 서면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극단적으로 중국산 재료로 중국 공장에서 조립한 후 완제품을 이탈리아로 들여와 판매하면 수입원장상에는 이탈리아산으로 찍힌다는 것이다.

가구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나뚜찌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아예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제품은 ‘나뚜찌 에디션’으로, 이탈리아산은 ‘나뚜찌’로 구분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가구 브랜드는 중국산과 이탈리아산이 혼재돼 있기도 하다”며 “수입가구를 구입할 소비자는 브랜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장 정보를 가감 없이 공개하는 곳을 위주로 살펴봐야 원산지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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