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중 인도네시아에 처음 진출한 KEB하나은행의 지점 60여곳에서 일하는 직원 1,200여명 가운데 한국인 직원은 수십명에 불과하다. 지난 1990년 현지에 발을 디딜 당시부터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으로 몸집을 키운 결과다. 이를 통해 하나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의 현지 고객 비중은 90%에 달하며 전체 기업대출 가운데 인도네시아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 75% 수준에 이른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라인과 지분동맹을 맺으며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난해 10월 라인파이낸셜아시아는 하나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의 지분 2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부터 모바일 기반의 비대면 대출을 확대하는 등 디지털 은행으로 전환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 하나은행 측의 설명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일자리 창출의 ‘1등 공신’이 되고 있다. 현지화 전략으로 사업 터전을 잡으면서 디지털이나 인수합병(M&A) 등 은행 저마다의 고유한 전략으로 색깔을 내기에 분주하다.
1993년 국내 은행 최초로 호찌민에 진출한 신한베트남은행은 1,650여명의 현지인 직원을 고용하는 현지 1위 외국계 은행으로 우뚝 서 있다. 스즈키컵 우승 신화를 일궈낸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도 효과를 내고 있다. 박 감독이 광고 모델로 활동한 후 지난해 12월 기준 고객이 100만명에서 120만명으로 20%나 늘었으며 이 중 카드 고객은 19만명에서 21만명으로, 인터넷뱅킹 고객은 12만명에서 18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베트남에서는 소매금융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디지털 서비스를 알리는 데도 박 감독이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현지 금융사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인수한 곳은 현지에서 전국 영업망을 보유한 ‘비전펀드 캄보디아’로 지난해 상반기 기준 지점 106개, 직원 1,400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총자산은 2,200억원에 달한다. 비전펀드를 흡수하면서 현지 직원 1,300여명을 100% 고용해 사회적 책임도 다했다. 우리은행은 캄보디아 현지 법인을 상업은행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현지 1등 은행으로 길러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KB국민은행은 주택금융 노하우를 살려 미얀마에서 ‘금융 한류(韓流)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지법인인 KB마이크로파이낸스미얀마는 다소 늦은 시점인 2017년 초 영업을 시작했지만 소액 주택자금대출을 특화상품으로 선보이며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실제 이 법인의 대출잔액은 지난해 3월 말 기준 109억차트(한화 약 80억원)를 기록하며 미얀마 금융당국에 제출했던 영업계획을 초과 달성했다. 이 같은 인기는 연 30%에 달하는 고금리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대출해줬기 때문이다. 현지법인은 미얀마 건설부와 협업해 연 금리 24~26% 수준에 대출만기도 5년으로 긴 주택자금대출을 내주고 있다. 건설부와의 끈끈한 관계는 주택금융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형성됐다. 국민은행은 2017년 미얀마 건설부 및 미얀마 주택건설은행과 ‘미얀마 주택금융시장 발전 및 주거환경개선 사업진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국내 은행들이 저마다의 전략으로 빠르게 안착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현지인 점포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등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은 의사소통 한계나 현지인의 금융 전문성 부족 등으로 인해 점포장 등 높은 자리에 현지인을 발탁하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크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점포장을 현지인으로 임명하면 현지인 고객을 유치하는 데 보다 효과적이며 현지 감독당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현지인 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