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주말 광화문의 풍경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불편하다는 편에 가까울지 모른다. 수많은 단체들이 진행하는 시위가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탓이다. 차량 통제는 다반사고 인도마저 시위대에 점령당해 걷기도 만만치 않다. 지난주 말만 해도 현 정부를 줄곧 비판하는 ‘태극기 부대’와 관련된 집회만도 10여곳에서 펼쳐졌고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남을 반대 또는 지지하는 모임, 민주노총 등의 노동자단체 등이 저마다 목청을 높였다. 주말 오후 광화문광장과 주변 거리를 뒤덮은 천막만 무려 60여개에 달했다.
광화문 일대가 그야말로 ‘아고라(광장)’가 돼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듯하다. 하지만 현장에 서보면 민주주의의 뿌듯함보다는 왠지 불안함과 갈등의 극대화 그리고 답답함이 더 다가왔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출하겠다고 외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 원색적 비난과 가짜뉴스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보수단체의 시위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미뤄졌던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머지않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방남이 공식화하면 이를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광화문 점령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일부의 극단적 행위이다. 얼마 전 승차공유 서비스 ‘카풀’을 반대하는 택시기사 2명이 몸을 불사른 것처럼 보수단체들이 광화문에서 똑같은 방식을 선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한마디로 ‘외눈박이’ 통일정책만 펼치고 있는 듯하다. 한쪽 눈은 휴전선 너머를 보더라도 한쪽은 우리 내부를 향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 정권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다르다며 ‘그들만의 목소리’로 외면만 하고 있다. 한쪽이 박수 칠 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혁신성장과 포용국가를 다시 한 번 천명했다. 다음달에는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내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단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챙기는 수준을 넘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더 큰 포용의 자세가 절실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대장군 한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신은 젊었을 때 동네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는 수모를 당했지만 꿋꿋이 참아내 결국 초왕이 된다. 그 유명한 고사성어 ‘과하지욕(袴下之辱)’이다. 그는 금의환향해 자신이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한다. 특히 그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불량배도 찾아낸다. 하지만 복수의 칼날 대신 오히려 상을 내렸다. 자신에게 인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는 것이 이유다. 평민 출신인 한신은 적도 품을 줄 아는 ‘정치력’이 있었던 것이다.
집권 3년 차로 접어든 현 정권에는 한신의 넉넉함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진보세력은 방남 환영 박수를 치기 전에 정부를 비난하고 김 위원장을 반대하는 세력도 안으려 발버둥 쳐야 한다. 이들 중에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과 싸우다 다치거나 부모·형제자매를 잃은 사람은 물론 70년 넘게 진행된 반공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사람들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품어야 하는 또 하나의 아픈 역사다.
김 위원장의 방남에 앞서 대통령이 직접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정을 설명하는 용기와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극단을 피해 조화로운 세상을 위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다. 이런 것이 진짜 ‘포용’ 아니겠는가. 올해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 역시 이념을 떠나 한 세기 전에 독립과 항일의 한 가지 목표로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쳤듯 어느 한쪽만의 잔치가 아닌 사회적 ‘포용’의 장이 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