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산 금괴 4만개를 국내 공항 환승구역에서 여행객을 동원해 일본으로 빼돌린 금괴밀수범 8명에게 무려 4조5,000억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역대 최대 벌금액수이지만 사실상 납입이 불가능해 의미 없는 ‘황제노역’이 재연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부산지법 형사5부(최환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관세·조세), 관세법·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밀수조직 총책 윤모(55)씨에게 징역 5년, 운반조직 총책 양모(47)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각각 벌금 1조3,000억원, 추징금 2조102억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공범 6명에게는 징역 2년6개월~3년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669억~1조1,829억원, 추징금 1,015억~1조7,951억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 전체 8명이 받은 벌금액은 무려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홍콩 금괴를 국내 공항 환승구역에 반입한 후 관세법에 따라 신고하지 않고 일본으로 반출해 막대한 소득을 얻고도 은닉해 약 68억원의 조세를 포탈했다”며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으로 동기가 매우 불량하다”고 판결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무료 일본 여행을 미끼로 금괴 운반책에 가담시킨 가족 여행객들이 밀수범으로 구속되는 일도 생겨 사회적 폐해가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윤씨 등은 2014년 일본의 소비세가 5%에서 8%로 인상되면서 일본의 금 시세가 급등하자 세금이 없는 홍콩에서 금괴를 사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빼돌려 매매차익을 노렸다. 일본이 홍콩 직항 입국 승객에 대한 금괴밀수 단속을 강화하자 국내 세관의 단속이 미치지 않는 인천·김해공항 환승구역에서 금괴를 한국인 여행객에게 넘기는 ‘금괴 출발지 세탁’을 한 셈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일당 50만~80만원, 공짜 여행’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올린 뒤 모집한 한국인 여행객을 금괴 운반에 이용했다. 2016년에만 한국인 여행객 5,000명 이상이 이들의 꾐에 빠져 금괴 중계밀수에 동원됐다. 이들이 챙긴 시세차익은 400억원대에 달하며 1년 6개월간 빼돌린 금괴는 4만321개, 시가로 2조원이다.
윤씨와 양씨가 받은 벌금액 1조3,000억원은 역대 최대이며 추징금 2조102억원은 분식회계 혐의로 23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이들은 최장 3년간 노역장에 유치되며 노역 환산 시 하루 일당은 13억원에 달한다. 보통 노역 일당은 하루 10만원으로 책정된다는 점에서 윤씨와 양씨는 이보다 1만2,000배나 많은 일당을 받게 되는 셈이어서 형평성·실효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황제노역을 두고 처벌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1992년 일수벌금제 도입이 제안됐지만 27년째 제자리다. 일수벌금제란 재산과 소득에 따라 같은 범법행위를 해도 벌금액수가 달라지는 제도로 범죄행위에 대해 징계일수를 정한 뒤 개인의 재산·소득에 따라 일일 벌금액수를 정해 징계일수에 곱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