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혔던 북미대화 판이 갑자기 출렁이기 시작하자 미국 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성과에만 매몰돼 2차 북미회담에서 북한이 원하는 대로 협상을 마무리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감축이나 미사일 폐기 선에서 제재완화 카드를 북한에 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을 겨냥하는 핵물질이 북한 내부 어딘가에 그대로 존재하는데도 북미 정상이 손을 잡아버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15일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지난주 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된 후 실무와 고위급 북미대화가 동시에 벼락치기처럼 속도를 내고 있다. 북측 협상 실무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스웨덴으로 향하고 고위급 채널 대표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오는 17~18일(현지시간)께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북미 고위급 회담 불발 이후 침묵을 거듭하던 북한이 자세를 바꿔 협상에 적극 나서자 미 조야에서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강하게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현지시간) 핵 전문가들을 인용해 지난해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의 핵 능력은 더 강화됐다고 보도했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시야에서 비켜나 핵 프로그램을 용인받고 있는 이스라엘처럼 북한의 무기도 ‘잊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한 해 북미가 대화 국면에 있었지만 결국 북한은 그 사이 조용히 핵 능력을 키워 2차 정상회담 준비에 나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중국을 등에 업고 더 강화된 핵 능력을 앞세워 협상에 나서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과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2차 북미회담에 나서게 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전환용으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만으로 합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내부 사정을 간파하고 있는 북한은 연일 대미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북한 통일신보는 15일 “미국이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또 강조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연구센터장은 “북한에 끌려가고 있는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없이 이번에 제재를 완화해줘 버리면 다음에는 쓸 카드가 없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최악”이라고 지적했다.